고양이에 관한 어렵지만 해야 할 이야기 VOL.73 사계절 시리즈: 봄 | 『도시의 동물들』_길 고양이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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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시의 동물들』 첫 회입니다. 제목은 「고양이에 관한 어렵지만 해야 할 이야기」. "이제는 길고양이의 입장에서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고려할 시간이 되었다." 주변을 돌아보며 글을 읽어 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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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고양이 1: 고양이에 관한 어렵지만 해야 할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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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집 안에 들이기 시작한 기억
1986년 부산의 봄, 엄마 손을 잡고 장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인도와 차도의 경계에 앉아서 고양이(Felis catus)를 파는 할머니가 있었다. 빨간 ‘다라이’ 하나에 새끼 고양이만 네댓 마리가 들어 있었으니, 고양이를 정기적으로 생산해서 파는 할머니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한 손으로 들어 올릴 수 있는 크기의 어린 고양이는 한 마리에 오백 원이었다. 여느 아이들처럼 나는 엄마에게 고양이를 기르자고 제안했을 것이다. 꼭 짐승을 싫어하는 엄마가 아니더라도 부담이 되는 제안이었을 테고, 그 제안에 고양이 돌봄을 공동으로 책임지겠다는 전제가 없다는 것도 잘 아셨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고양이 입양을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어린이를 잘 기르는 데에 고양이를 기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는지 긴 실랑이 없이 오백 원을 주고 고양이를 사주었다.
요즘 표현으로 ‘노랑둥이’, ‘치즈냥이’라고 부르는, 누런 줄무늬와 새하얀 털이 조합된 털빛의 고양이를 골랐다. 어린 고양이는 아직 눈망울에 멜라닌이 부족해 푸른 눈이 도드라졌다. 진주 색은 아니었지만 진주처럼 둥글어서인지 진주라고 부르기로 했다. 고양이 전용 화장실 모래도, 고양이 전용 사료도 없던 시절이다. 세숫대야에다 동네 공터에서 퍼 온 모래를 넣고 사람이 먹고 남은 밥을 먹였다. 진주는 두루마리 휴지를 찢으며 노는 걸 좋아했고, 두툼한 솜이불 위에서 나와 낮잠을 잤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서 일 년도 함께 살지 못하고 진주를 누군가에게 주었다고 하는데, 그에 관한 기억은 없다. 진주와 헤어질까 봐 걱정하며 울었던 기억은 있지만, 헤어져서 운 기억은 나지 않는다. 고양이를 중성화하는 사건이나 집 안에서 수명이 다할 때까지 길러야 한다는 관념이 낯선 시대였으니 아마 진주는 옮겨 간 집에서 어느 시점엔가 집을 나갔을 것이고, 집이나 병원이 아니라 어느 후미진 골목 길바닥에서 꽤 짧은 삶을 마쳤을 것이다. 지금의 여느 길고양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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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고양이, 오랜 동거의 역사
길고양이가 발에 채이고 입양을 기다리는 고양이가 보호소에 줄을 서 있는 지금과 비교하면, 품종묘가 아닌 고양이를 사고팔던 시대는 꽤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는 매년 한국 가정에서 기르는 개와 고양이의 수를 발표한다. 통계는 산출 방법이 이랬다저랬다 해서 무척 부정확하지만 꼭 통계를 인용하지 않아도 집 안에서 기르는 고양이가 꽤 늘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인스타그램처럼 개인이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거나 타인의 일상을 감상하는 미디어에서 고양이가 등장하는 일이 많아진 것도 고양이가 늘어난 결과 혹은 이유일 것이다. 서울 시내에서는 가방에 츄르(짜 먹이는 고양이 간식) 몇 개 혹은 고양이용 간식 캔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집 안에 고양이를 들이기 시작한 지 삼십여 년 만에 집 밖에서도 고양이를 기르게 되었다.
원래 고양이는 집 안팎을 구분하지 않고 인간과 살아왔다. 오랜 시간 인간은 집 앞의 마당이나 주변 공터까지도 주거 공간으로 사용했고, 고양이는 그 ‘경계’에 살도록 진화적으로 적응하는 데 성공했다. 가축화 이전의 고양이는 북아프리카 야생의 비좁은 생태계 틈바구니에서 살 길을 찾아야 했지만, 농경을 시작한 인간이라는 종을 만난 뒤로는 다른 방식의 삶이 가능해졌다. 인간이 풍부하게 생산하는 먹이 자원과 그에 몰려드는 쥐는 그야말로 노다지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농작물을 놓고 쥐와 경쟁하던 인간은 고마운 마음에 고양이를 해치지 않고 곁을 내줬다. 인간과 고양이의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인구 밀도가 높지 않던 시절에는 인간을 따라 원서식지를 떠난 고양이가 새로 정착한 지역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대단하지 않았다. 인간도 적었고, 먹이 자원도 적었고, 고양이도 적었다. 그 시절 인간처럼 적당히 죽고 적당히 살아남았다. 그러나 급격한 인구 증가는 주거지의 면적을 넓혔고, 인간이 사는 범위가 넓어지자 고양이의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고마웠던 고양이는 이제 ‘도둑’이 되었다.
그리고 또 몇 십 년이 흘러 ‘도둑고양이’라고 미움받던 고양이들은 다시 ‘동네 고양이’라는 이름으로 환대받는 존재가 되었다. 내가 기르는 고양이가 아니라도 예뻐하고 돌보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집 안에 사는 고양이도, 집 밖에 사는 고양이도 인상적인 증가세를 보였고 그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돌보려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른바 캣맘, 캣대디, 케어테이커 등의 신조어가 자리 잡은 것은 새롭고 유의미한 길고양이 돌봄 문화가 생겼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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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최태규
동물복지학을 연구하는 수의사이자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로 일한다. 『일상의 낱말들』(공저), 『관계와 경계』(공저), 『동물의 품 안에서』(공저) 등을 썼다.
📷사진_이지양
순수 미술과 미디어를 전공한 시각 예술가이다. ‘당신의 각도’ 전시를 계기로 『사이보그가 되다』에 사진으로 참여했고, 이후 『일상의 낱말들』, 『아무튼, 메모』, 『1만 1천 권의 조선』 등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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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글 잘 보셨나요? 요즘에 길고양이를 볼 때면 어떤 생각이 든다기보다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방법을 질문하곤 합니다. 사람만 사는 세상이 아니었던 게죠. 바로 답이 나올 수 없는 터라 오래 두고 봐야 할 것 같은데요. 당분간 『도시의 동물들』 연재가 이어질 예정이니 꾸준히 읽으면서 함께 생각해 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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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책방 시즌 2_우리의 정원]
연예인 덕질과 친구 관계
연예인 덕질과 친구 관계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품, 『우리의 정원』(김지현 장편소설) 편입니다. 현직 선생님들이 바라본 요즘 청소년의 마음.
"누군가에게 가까이 간다는 것은 좋은 일과 슬픈 일을 동반하는 것." 책 얘기 들으러 왔다가 인생 공부하고 간다는 호호책방. 많이들 놀러 오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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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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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작가 X 송주현 초등교사. 속상한 일에는 입을 꾹 다무는 우리 아이의 속마음 들여다보아요.
피학대 아이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후유증과 이들을 지지하고 보살피는 사회적 돌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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