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북클럽 선정!
Vol.61 INTERVIEW:
심윤경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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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 때 죽을 먹는 이유는 영양과 약효가 다른 음식보다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소화에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는 말하자면 죽 같은 책입니다. 심윤경 작가님은 한껏 힘을 풀고 독자와 마주합니다. 그리고 할머니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 무언가가 조용히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누구를 위한 책일까요?
아래 인터뷰를 읽고 생각해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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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윤경 || 2002년 자전적 성장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제7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 『달의 제단』으로 제6회 무영문학상을, 2021년 『영원한 유산』으로 제5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특별상을 받았다. 그동안 장편소설 『이현의 연애』 『사랑이 달리다』『사랑이 채우다』 『설이』, 연작소설 『서라벌 사람들』, 동화 『화해하기 보고서』 등을 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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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단 20년, 첫 에세이예요.
🎁 지난 스무 해 동안 저는 엄마로서 작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며 고비를 겪었고 분투했는데, 그 과정에 할머니가 눈에 보이지 않게 항상 함께하셨어요. 실제로 곁에서 함께했던 가족들보다 할머니가 해 주신 역할이 더 컸다고 하면 가족들이 섭섭하겠죠!
하지만 실제로, 저에게 꼭 필요했던 정신적인 지주로서의 역할을 저는 할머니에게서 찾았고, 아이가 스무 살이 넘고 등단 20년 차를 맞이한 올해 그 이야기를 꼭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할머니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제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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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일기들을 뒤져 보면 제가 할머니에 대해 본격적으로 ‘집착적인 반추’를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입니다. 그전까지는 일기에 할머니가 거의 등장하지 않아요. 그 무렵에 꿀짱아의 사춘기와 저의 글 막힘 현상이 시작되었고, 책 속에 등장하는 저의 베프는 심리상담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속이 타서 친구와 하루가 멀다 하고 뒷산을 돌면서, 똑같이 찾아온 일과 양육의 위기들을 함께 나누면서, 뜻밖에 저에게 할머니라는 존재가 매우 거대하고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전까지 별 생각 없이 살아왔던 방식들의 누적된 부작용이 폭발적으로 쏟아진 시기에, 내가 앞으로 다르게 살아가야 할 방식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저는 할머니를 다시 만났고 그분의 추억과 숨은 가르침들이 마치 구명대인 것처럼 매달렸습니다. 이 책은 그 길었던 방황과 고민을 정리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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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젊은 세대에게 작가님의 할머니는, 그들의 증조 할머니 또래예요. 어떤 점에 그들이 귀를 기울였을까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할머니 개인의 매력도 궁금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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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할머니 할아버지 들은 놀랍도록 젊고, 똑똑하고, 멋쟁이시죠. 저의 할머니는 진짜 ‘오리지날’ 전통 할머니였어요. 우리 할머니는 요즘의 할머니보다 한 세대 더 웃어른이었고, 이제는 사라진 전통사회의 모습을 몸으로 계승하신 마지막 세대였어요. 늘 한복을 입었고, 제가 여섯 살 정도였을 때까지 요강을 사용했고, 참빗으로 머리를 빗어 비녀로 쪽을 찌는, 이제는 영화에나 나올 법한 그런 모습이었어요. 가끔 ‘도안이가 저노햇다’(동연이가 전화했다) 같은 메모를 남길 때 한글을 겨우 쓰셨는데 학교에 다닌 적 없이 어깨너머로 배운 거라서 글씨가 어린아이같이 삐뚤빼뚤했어요. 그 글씨도 너무 그립네요. 메모 쪽지 하나 보관할 생각을 왜 안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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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담을 수 없었던 할머니 얘기가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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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가 날개 달린 천사였다고 오해하는 분도 계실까 봐 다소 뜻밖의 일면을 소개하자면, 그분은 동물 혐오론자였어요. 고기를 거의 드시지 않았지만 ‘동물은 식용’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에 완고하게 충실하셔서, 그저 예뻐하는 목적으로 동물을 키우는 걸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셨어요. 제가 무지무지 사랑했던 두 마리 강아지들도 무척 싫어하셔서, 걔들은 할머니만 보면 무서워서 숨었어요.
또 하나, 할머니는 제가 싫다고 하는 일을 한 번도 억지로 시킨 적이 없었는데, 딱 한 가지, 저를 어르고 달래서 굳이 하셨던 일이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기였어요. 한여름 뒷마당의 봉숭아를 꽁꽁 찧어서 냉동실에 넣어 두시고 일 년 내내 제 손톱에 새빨갛게 물을 들여 주셨어요. 봉숭아 물을 들이려면 손가락에 실을 묶고 자야 해서 이걸 왜 해야 하냐고 투정을 부리면 ‘저승길이 밝아진단다’라고 대답하셨어요. 할머니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였지만 당신의 죽음이 어느 정도는 두려우셨던 것 같고, 그 두려움을 그런 식으로 달래셨던 것 같아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그렇게 많은 봉숭아 물을 들였으니 그분의 마지막 길이야말로 눈부시게 밝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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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와 가까워진 듯합니다. 어쩐지 속상한 날, 할머니라면 어떤 말을 하셨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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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가 아프거나 속상하신 것 같아서 “할머니, 어깨 주물러 줄까?” 하면 언제나 “아녀. 한바퀴 돌고 오면 되지.” 하셨어요. 추우나 더우나 그분만의 작은 산책을 돌아가실 때까지 멈추지 않으셨고, 겨우 그걸로 한평생 몸과 마음의 아픔을 다 털어내셨어요. 할머니는 당신의 몸과 마음에 우울이 고이지 않도록 퍼내는 그런 일상적인 작은 펌프들을 여러 개 갖고 계셨는데, 그걸 말로 표현하자면 ‘툴툴 털어 버리기’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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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툴툴 털어 버리기.' 좋은 말입니다. 아쉽지만 인터뷰도 이만 털어버릴 때가 됐네요. 에세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볼 수 있음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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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쓰면서 에세이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에세이는 보다 직접적인 ‘나’의 이야기로 독자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어요.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가까운 셈이죠. 본업인 소설에 충실해야겠지만, 아껴 먹는 디저트처럼 종종 에세이를 써 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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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 작가가 할머니에게 배운 제대로 사랑하고 표현하는 법 (진행: 요조)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북토크가 있었습니다. 할머니를 추억하는 동시에 지금 내 앞의 가족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좋을까 생각하는 자리였지요. 삼대가 함께 사는 풍경이 낯선 요즘, 심윤경, 요조 작가님의 대화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오늘 퇴근길에는 라디오 듣듯 두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영상: 사진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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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북뉴스에는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의 표지에 실린 3종의 아이템을 묘사하는 이벤트가 있었지요.
(TV, 요강, 사과) 예상보다 많은 분들의 응모에 기쁜 마음으로 하나둘 여러분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림 같은 묘사를 하나둘 읽다 보니 사생대회를 열었었나, 혼란스러웠습니다. (백일장인데......) 아무튼, 이야기를 모두 공유하고 싶지만 3개만 추려서 공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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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할머니의 요강입니다. 하얀 바탕에 동글동글한 모양새 꽃과 잎사귀가 그려진 모습이 싱그럽습니다만 요강입니다. 바깥에 변소가 있던 시절, 늦은 밤 필수품인 요강. 잠에서 깬 손주가 화장실에 가기 무섭다고 말할 때, 짜잔 하고 선물처럼 눈에 들어온 요강. 쪼르르르 요강에 소변을 누면서 손주는 할머니의 지혜를 배우지 않았을까요. 비록 변을 담는 그릇이지만 하얀 바탕에 고운 꽃이 그려진 요강은 귀한 물건 같습니다. 이제는 쉬이 볼 수 없는 요강, 어릴 적 할머니집에서 보았던 그 이미지만 제 머릿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네요. 예쁜 요강을 보니 웃음 지으시던 할머니의 귀여운 모습이 새삼 떠오릅니다.
텔레비전은 할머니와 떼놓을 수 없는 물건입니다. 할머니 댁에는 아침 저녁으로 연속극 소리가 끊이지 않았지요. 까맣고 네모난 텔레비전은 동그란 다이얼을 돌려 채널을 바꾸고 소리를 키우고 줄였습니다. 브이 자 모양의 안테나도 반갑습니다. 지지직 소리가 나면 안테나를 흔들어 주고 방향을 맞추며 조절하던 기억이 납니다. 텔레비전 장식장 속에는 두꺼운 전화번호부와 할머니의 반짓고리가, 손톱깎이 세트가, 그 속에 작고 예쁜 진주가 달린 귀이개가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오색의 알사탕이 담긴 깡통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엄마 몰래 내 입에 쏙쏙 넣어 주었던 그 사탕이요. 할머니의 장식장은 내겐 보물상자 같았지 말입니다. 할머니는 늘 집에 과일을 사 두셨습니다. 그리고 손주가 놀러 가면 꼭 사과를 깎아 주셨지요. 하얗고 커다란 접시 위에 예쁘게 깎아 둔 사과 두 조각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할머니는 과일을 깎으시곤 드시는 둥 마는 둥 손주 손에 포크를 쥐여 주며 어서 먹으라고 하셨지요. 곱게 깎아 놓아진 사과를 보면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보입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달콤한 과일의 맛과 향긋한 사과향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할머니의 접시에는 늘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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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쪼르르르, 지지직, 사르르. 세상에. 장식장 속까지 묘사해 주셨군요. 정성 가득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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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를 떠오르게 하는 세 가지 물건이네요. 태어나서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함께 살았어요. 어릴 때는 늘 할머니와 함께 잤는데 안방 바로 앞이 화장실이었지만 주택 특유의 웃풍 때문에 겨울엔 늘 방구석에 요강을 뒀지요. 저렇게 예쁜 채색이 된 도자기 요강이 아니라 실용적인 스테인리스 요강이었어요. 밤에 자다가 비몽사몽간에 요강에 조심스레 앉던 기억, 아침이면 바지런하게 요강을 씻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TV 또한 할머니와 저의 절친이었죠. 오후 10시 무렵에 시작하는 다양한 드라마를 (거실에선 주로 할아버지가 뉴스를 보셨기 때문에) 할머니는 제 방에 와서 보시곤 했어요. 제 방에 있던 건 VCR이 일체형으로 붙은 작은 사이즈의 학습용 TV였지만 저와 할머니의 드라마 사랑에 방해가 되진 않았죠. 할머니와 수많은 드라마를 봤지만 어쩐지 <화려한 시절>이라는 드라마가 생각이 나네요. 지금 찾아보니 종영이 2002년 4월. 그 후로 채 1년을 못 살고 돌아가셨군요.
세 번 째 아이템은 귤인가요? 돌아가신 지 20여 년이 되어서 그런가, 할머니가 좋아하셨던 과일이 특별히 기억이 나지 않아서 슬프네요. 하지만 할머니는 제가 해 드리는 모든 음식을 좋아하셨어요. 평생 한식만 드셔서 그런지 각종 서양 요리들을 해 드리면 그렇게 잘 드시곤 했지요. 할머니는 제가 해 드린 음식을 드시고, 저는 할머니의 사랑을 먹고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그 충만한 사랑이 저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표지의 그림 덕분에 할머니를 오래 추억해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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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면 어떻고 귤이면 어떤가요. 할머니와 독자님의 호시절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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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무늬의 요강과 낡은 아날로그티브이. 서랍장과 접시에 놓인 사과나 복숭아로 보이는 과일이 보이네요.
요즘 외할머니와 통화 중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아직도 잘 먹고 잘 자고 뭣 한다고 아직까지 살아 있을까잉"입니다. 반어법이라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도 잘 드신다는 것은 곧 장기가 잘 작동한다는 이야기겠고 매번 통화할 때마다 할 이야기가 있으시다는 것은 잘 보고 들으실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사람이 태어나고 죽기까지 중요한 건 돈과 명예, 권력이 아니라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잘 보고, 잘 듣고, 건강한 생활을 이어 나가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 봅니다. 주제에 벗어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썼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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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에서 벗어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할머니의 반어법과 그것을 헤아리는 독자님의 마음이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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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의 피드백은 북뉴스 쓰는 일에 큰 도움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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