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입니다 : ) ① 2020년 마지막 여는 글 / 지하철과 열전도 아시겠지만 지하철 내부는 대부분 스테인리스 철로 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천으로 된 의자가 있었던 것 같지만 지금은 사라졌습니다.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는 손잡이를 빼면, 의자와 지지봉 모두가 철로 되어 있는 것이 요즘 지하철입니다. 만질 수 있는 건 거의 다 철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지하철에 그나마 있던 천마저 철로 대체된 것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흡수력. 천은 습기를 흡수하기 때문에 냄새가 베이고, 색도 쉽게 변합니다. 하지만 철은 반대입니다. 습기를 머금지 않고, 색도 변하지 않습니다. 물론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는 추리소설의 법칙처럼, 철도 모든 흔적을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온도가 있습니다. 추운 겨울, 따뜻한 우리 몸에 닿은 철에 피어나는 작은 성에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열전도 현상의 한 예입니다. 저는 언젠가 성에가 낀 지하철의 지지봉을 꽉 쥐었던 적이 있습니다. 별로 흔들리지 않는, 그리고 앉을 자리가 충분했던 지하철이었지만 잡지 않을 방도가 없었습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던 그 지지봉에는 일상적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진한 성에가 묻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지하철에 불법 체류 중인 최후의 이민자같은 그 성에가 눈에 거슬렸습니다만, 이런 느낌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거울 같은 지지봉을 부옇게 만들 정도로 강한 누군가의 손아귀. 익숙한 번호에서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그 불투명한 지지봉을 봤습니다. 그저 제 상상일 뿐이지만 그는 무언가 잡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그에게는 잡을 게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도 그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기에 애꿎은 지지봉에 성에를 남긴 게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들이 이어지던 중, 살면서 무엇 하나에 그렇게 간절해보지 못했던 저는 어느 순간 지지봉을 붙잡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제 손에 그의 온기가 전도되었습니다. 마치 악수처럼요. 다분히 감상적인 (그리고 오그라드는) 이야기지만, 저라도 그를 잡아주고, 지지해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연대. 그런 것. (코로나가 아직 맥주 이름이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좌우간, 모두에게 공평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도 편하지 않았던 2020년이 저뭅니다. 불확실성이라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확실했던 일 년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어져 온기를 느끼기 어려웠을 때, 사계절출판사의 책이 전도체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내년에도 성에 가득한 책으로 만나 뵙겠습니다. 해피뉴이어. ② 《마당 씨》3부작 편집자 후기 - 홍연식 만화 면접 때 받았던 질문 중 하나. “책 만드는 과정 중 어떤 과정이 가장 괴로운가요?” 그에 대한 나의 답. “보도자료 쓸 때요….”(이 질문을 한 팀장님도 매우 공감하신 답변…!) 대부분의 책은 정말이지 보도자료 쓸 때가 가장 괴롭고 외롭다. 그런데 《마당 씨》 3부작은 달랐다. 보도자료 단계까지 가기 한참 전부터 나를 괴롭히던 과정이 있었으니, 바로 뒤표지 카피 작성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평상시에 카피 쓰는 게 쉬웠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어떤 식으로든 쓸 수는 있었다. 줄거리가 흥미로운 책은 줄거리를 좀 다듬어서, 주제가 좋은 책은 주제가 잘 드러나게. 사실 어느 정도 관성처럼 써온 면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 이 시리즈의 책은 이런 식으로, 이 책은 이 정도만 해도 되니까 하고. 《마당 씨》 3부작은 이 모든 게 전혀 통하지 않는 책이었다. 줄거리를 요약해서 쓰자니, 장장 3대에 걸친 가족의 역사와 그 역사가 되는 일상의 빛나는 이야기들을 어떻게 단 몇 문장으로 요약한단 말인가. 굳이 하자면 이런 식으로? “어린 아들과 아내와 함께 텃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마당 씨, 그에겐 병수발을 들어야 할 아픈 부모님이 있다.” 이 책을 모두 읽고 난 독자들이라면 저 문장이 얼마나 의미 없는 문장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당 씨》 3부작은 단순히 아내와 아이와 텃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귀농 부부의 소소한 삶의 이야기도 아니며, 아픈 부모님을 돌보는 본격 효도 일기도 아니다. 추천사를 써주신 황두영 작가님의 표현대로 이 작품은 ‘한 가족 위에 한국의 폭력적인 현대사, 계층과 성별 불평등, 자본의 환경파괴, 도시와 지방의 격차, 부족한 사회 안전망 등이 어떻게 포개어 있는지 보여주는 대서사극’이다. 그러니 주제가 잘 드러나는 카피 또한 쓸 수 없었다. 앞서 말한 모든 내용이 어우러져 있는데, 결국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것은 우리의 ‘삶’인데, 그 지난한 삶을 어떻게 단 몇 줄로 표현할 수 있을까. 감히 이 작품은 내가 몇 마디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 아니었다. 어떤 카피를 써도 이 작품을 제대로 소개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것 같았다. 새로운 문장 쓰기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작품 속에 나오는 주인공의 대사로 메인 카피를 대신했다. 그리고 꼭 추천사를 받고 싶었던 분들에게서 받은 훌륭한 추천사로 이 작품 소개를 대신하기로 했다. 임순례 감독님과 황두영 작가님의 더할 나위 없는 추천사로 그렇게 뒤표지를 채워 나갔다. 그래서 이 책은 꼭, 많은 분들이 직접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가끔 어떤 책들은 내용보다 더 빛나는 외피를 두르고 있기도 하지만, 이 책은 내용에 비해 겉으로 포장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그만큼 이 작품에 자신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다 써놓고 보니, 이 책의 겉모양도 여느 책 못지않게 빛나긴 한다. 무려 ‘홀로그램박’이 전면에 들어가 있어 이미지로 보는 것보다 실물로 보는 게 훨씬 예쁘답니다, 여러분. 여러모로 이 책은 꼭 직접 보고 직접 읽어보시면 좋은 책인 것으로! - 편집자 H ③ 《막내의 뜰》 다섯 번째 집 이야기 1, 2, 3회 - 왜그림 에세이 사계절출판사의 이벤트, 그리고 외부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입니다. 조우리 작가의 《오, 사랑》에 이어 추울 때 요긴한 몸의 지방층처럼 읽으면 우리 몸이 아니라 마음의 지방이 될 사계절문학상이 곧 마감입니다. 12월 31일 우편소인 유효! "저는 독자 분들이 제 책들에서 자기 자신만을 위한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만의 작은 보물이요. 어쩌면 푸른 유리알, 어쩌면 해변이나 호숫가, 들판에서 발견한 작은 돌이라도요. 그건 냄새와 맛, 아니면 자기가 매우 좋아하는 것들, 아니면 소중한 사람에 대한 기억이 될 수도 있겠죠. 제 책을 봐 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드려요. 그 모든 분들에게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온라인 서점에서 사계절 그림책을 구매하시면
2021 Dear 그림책 달력을 드립니다.
(한정 수량으로 진행됩니다.) 홍연식 작가의 《부부소소사》와 《마당 씨의 식탁》《마당 씨의 좋은 시절》《마당 씨의 가족 앨범》으로 연말에도 서로 모이지 못하는 마음을 달래 보세요.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 나는 투명 커버에 티코스터, 2021 새해 달력까지 덤으로 받으실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