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에 한 번 큐레이션 북뉴스를 보내다 보니 이 꼭지에선 유독 절기에 관해 이야기할 때가 많았습니다. 날씨를 주제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는다는 증거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절기로 운을 떼는 것은 공기의 결과 하늘의 높이, 빛의 순함과 거침 등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한 가장 기초적인 사실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책으로 독자와 만났으나 단지 거기에만 머물고 싶지 않았습니다. 일상에 스며드길 바랐다는 흔한 말이 그간의 사정에 관한 설명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가장 최근에 지난 절기가 찬 이슬 내리는 한로(寒露)였지요. 그다음 상강(霜降)에는 서리가 내린다고 합니다. 북뉴스를 마무리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아직 한 주가 남았지만 정규 편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북뉴스는 오늘로 끝입니다. 완주!
완주 특집으로 이번에는 특별히 한 권의 책만 소개합니다. 담당자가 생각했을 때 이 책만큼은 부디 읽어주길 바라며 골랐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도 있었지요. 큐레이션에선 늘 3권의 책을 소개했는데, 그 모양이 꼭 '...'처럼 보이는 게 아니겠어요? 하하하. 마침표는 점 하나여야 하잖아요. 대신 한 권을 길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긴긴 점. 너그러운 눈으로 재밌게 봐주시길.
※ 북뉴스는 다음 10월 24일 목요일에 마무리됩니다. 마지막 북뉴스에는 새로운 서비스 소개와 함께 독자를 위한 특별 이벤트가 담겨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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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과 사람. 두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책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고병권 작가님을 모르는 분이 없기를 바라며 지난 여행의 기억을 다시 그려봅니다.
언젠가 교토에 갔습니다. 이곳의 버스는 정차할 때 다른 곳의 버스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립니다. 왜냐하면 버스의 문이 열릴 때 차의 축이 좌측으로 기울기 때문입니다. 승차 시퀀스에 액션이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이지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승객이 쉽게 차량에 탑승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승강장에 버스가 도착하면 ‘쉭’ 하고 공기 빠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인사하듯 차량이 기우는 것을 보고 있으면 여행자의 긴장은 조금 가라앉습니다. (풀무의 바람과 모닥불의 일렁임이 떠올랐는데 그건 아마 제 기분이 좋아서였을 겁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은 광경을 보았습니다. 창밖으로 휠체어 사용자가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휠체어 승객을 본 기사님은 차를 세우고 ― 역시나 인사하듯 차량을 기울이고 ― 밖으로 나가 미리 준비되어 있던 경사로를 설치했습니다. 인도와 버스 사이 50cm 정도 되는 바다가 매워지자 휠체어 사용 승객은 천천히 버스에 올랐습니다. 기사님은 뒤에서 승객이 탑승을 완료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먼저 밀어주지 않는다. 이런 원칙이 있는 게 아닐까요.) 정차에서 출차까지 적어도 2분은 걸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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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안에 대략 30명 정도 있었으니 그들이 휠체어 사용자를 기다린 시간을 합하면 대략 60분이었을까요. 휠체어 승객이 가려는 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그 2분 동안 버스에서 없어지거나 새로 생긴 시간의 합은 0과 같거나 조금 더 클 듯합니다. 휠체어 사용자가 버스에 탑승하지 못했다면 그는 60분 이상 휠체어를 끌고 어딘가로 가야 했을 겁니다. (저는 그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그가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턱을 넘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제가 모르는 상대의 불편함을 가능한 한 크게 보려고 하는데 장점 같진 않습니다.)
이런 편익 계산이 없다면 버스가 고개를 기울이고 기사님이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경사로를 설치할 수 있었을까요. 비교는 마음을 아프게 할 뿐이지만 우리나라의 수식은 불길할 정도로 단순한 듯합니다. 관련해 생각나는 구절이 있어 옮기며 이야기 마칩니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장애인들도 그렇다.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미안하지만 엘리베이터 버튼 좀 눌러주세요. 손이 닿지 않아서요. 미안하지만 빨대 좀 가져다주세요. 손을 쓸 수가 없어서요. 혼자서 옷을 입을 수 없어서 미안하고, 혼자서 밥을 떠먹을 수 없어서 미안하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장애인들은 한없이 구차해진다. 자신은 이런 것도 못하는 존재라는 걸 계속 고해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낮은 곳에 설치만 했어도, 음료를 서빙할 때 빨대 달린 컵을 제공만 했어도 미안하지 않았을 텐데, 우리 사회가 미안해하지 않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미안해진다." - 『사람을 목격한 사람』, 「구차한 고통의 언어」中 고병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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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이야기는 교토의 버스 이용객, 운행자들 뇌리에는 60분이라는 상수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제 희망 섞인 상상에 기초합니다. 당연히 그들의 시스템에도 지옥은 있습니다. (버젓이 버티고 있겠지요.) 버스라는 조금은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난 ― 기사의 재량에 따라 편차가 큰 ― 대중교통에서만 볼 수 있는 ‘예쁜 풍경’이었을 뿐인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보이는.
책을 읽기 전에 떠난 여행입니다. 이렇듯 책은 기억과 무작위로 연결되어 시간을 초월한 맥락을 만들어 나갑니다. 거창한 말일 수 있겠으나, 저는 독서의 원동력을 이런 경험에서 찾는 듯합니다. 책을 읽을 때 독자님 눈에만 보이는 밑그림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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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장애인야학의 철학 교사이자, 스무 해 넘도록 앎과 삶을 일치시키려 노력해온 사람, 고병권. 『사람을 목격한 사람』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그가 쓴 글과 투쟁 현장 등에서 행한 연대 발언을 모은 산문집이다. 묶어놓고 보니 ‘온통 사람’ 이야기다. 정확히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 사람들, 장애인, 이주민, 아픈 사람, 비인간 동물에 관한 이야기다. 시설에 갇힌 중증 장애인, 사냥당하듯 내쫓긴 불법 체류자, 아이를 살해하고 자살을 기도하는 부모, 아픈 몸을 미안해하게 만들고 변명하게 만들고야마는 이 사회에서 고병권은 무언가 이상하다고 끊임없이 묻는다, “역시 내가 바보인가” 하면서. 이 책은 억압과 차별, 편견과 무지 속에서 배제되거나 주변으로 밀려난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알아보는 것’과 ‘물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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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이야기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상강 다음에는 입동입니다. 곧 북뉴스는 냉장고로 들어갑니다. 상온에 있을 때 즐겨주세요. 하하하. 지난 북뉴스, 마지막으로 응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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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 🎱: 담당자
👀김시우
정여울 작가님 좋아하는데, 이런 연재도 북뉴스에서 다뤘었군요. 세 편의 에세이가 모두 흥미롭습니다. 메일함에 쌓이는 이야기들 99%가 사실상 의미 없는 데이터인데, 북뉴스는 1%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귀한 데이터 보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
김시우 독자님, 안녕하세요.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입니다. 북뉴스에서 의미를 발견한 독자님이 제게는 귀한 사람입니다. 귀하고 말고요. 다음에는 다른 곳에서 만나요. 위치는 다음 북뉴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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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점거당한 집』. 파주, 경주에 이어 세 번째 북토크에 초대합니다! 윤아랑 평론가, 최수진 작가님과 유튜브 라이브에서 만나요. 🎤
📖 일시: 10월 24일(목) 저녁 7시~8시 20분
📖 채널: 유튜브 사계절 TV
📖 신청 기간: 10월 22일(화)까지 (*신청하신 분에 한하여 유튜브 라이브 링크를 문자로 안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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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 유목제국사』 정재훈 교수 라이브 강연💬막북 고립의 한계를 극복하고 유목제국으로 발전한‘위구르’의 역사와 그 유산 복원- 고대 유목제국사 3부작(흉노, 돌궐, 위구르)으로의 연구 여정📌 강연 주제▲ 막북 초원에 고립된 한계 속에서 도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교역 국가로 성장하고 세계사에 거대한 유산을 남긴 유목제국 위구르의 역사 복원▲ 고대 투르크 비문 자료와 한문 자료를 연결하고, 지난 100여 년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여 위구르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 문명사관과 중국 중심 역사관에서 벗어나 위구르의 세계사적 위상 재정립▲ 고대 유목제국사(흉노, 돌궐, 위구르) 3부작 개괄🎈 강연 안내일시: 2024년 10월 25일(금) 오후 7시 30분채널: 유튜브 사계절TV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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