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에서는 호모 에렉투스들이 인류 첫 항해사였을 수 있다는, 그렇지만 다소 애매한 증거들을 다루었다. 그들의 뒤를 이어 다시 한번 아프리카를 벗어났고, 이번에는 지구 전체로 퍼져나간 호모 사피엔스들에게 바다는 어떤 존재였을지 생각해보자. 호모 사피엔스가 10만 년 전부터 해양 자원을 이용하였다는 증거가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부 피너클 포인트Pinnacle Point 등지에서는 바다 조가비를 비롯한 다양한 해양 자원을 식량으로 사용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일찌감치 바다를 삶터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연구자들은 마지막 빙하기의 혹독한 환경 변화가 그들로 하여금 해양 자원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고 해석한다. 지금의 우리가 일상에서 바다와 바다의 산물을 자연스레 대하는 태도는 이때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해양 자원의 이용은 육상 자원의 이용보다 한층 더 어려운 일이다. 육상에서 구할 수 있는 인간의 먹거리는 다른 동물들의 먹거리이기도 하다. 예컨대 ‘토끼가 먹는다면 우리도 먹을 수 있다’와 같은 학습 기제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바닷물 속에 있는 먹거리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미끄덩한 물체를 입에 넣는 것은 두려운 도전일 수밖에 없다. 먹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를 스스로 체험해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리하고 진취적인 누군가가 그것을 시작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바위에 붙은 조개류부터 시작했겠지만, 이내 꽤 깊은 곳까지 잠수해서 자원을 획득했다. 유적에 남아 있는 조가비들 중에 꽤 깊은 곳까지 잠수해야만 채집 가능한 종류도 있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바다는 자원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삶터가 되어 있었다.
바다에 익숙한 호모 사피엔스의 항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무대를 다시 웰라이시아 근처로 옮겨보자.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들이 도달했던 플로레스섬에서 더 나아가 티모르섬을 지났고, 미개척 대륙이었던 오스트레일리아에까지 도달했다. 중간 기착지였던 티모르섬에는 호모 사피엔스의 바다 생활을 보여주는 증거가 잘 남아 있다. 동티모르의 동쪽 해안 끝에 위치한 제리말라이Jerimalai 바위그늘 유적에서는 뗀석기와 더불어 많은 양의 물고기 뼈, 조가비, 낚싯바늘 등이 발굴되었다. 심지어 물고기 뼈가 육상동물의 뼈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출토되었다. 이것만 놓고 본다면 그들의 주식은 물고기였고, 그들은 사실상 전문적인 어부였다고 간주할 수 있다. 물고기 뼈의 구성 또한 흥미롭다. 절반 이상이 원양 어류이며, 길이 50∽60센티미터에 이르는 참치류가 50퍼센트를 점하고 있다. 당시의 조업 수준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지만, 이 정도의 비율이라면 그 집단의 취향이 확실히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특정 어종 포획법에 관한 지식이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참치 외에도 상어, 대형 가오리, 돔, 유니콘 피시 등 대형 어종의 뼈가 다수 나왔다. 이렇게 큰 물고기를 어떻게 잡았을까? 유적에서 발견된 낚싯바늘 한 점이 답에 대한 힌트를 주었다. 제리말라이의 낚싯바늘은 두꺼운 조가비를 자르고 갈아서 만든 것으로, 남아 있는 부분은 마치 갈고리의 끝부분처럼 생겼다. 발굴된 지층의 절대연대를 참고하면 약 2만 3000년에서 1만 6000년 사이에 제작되었다.
이 투박한 낚싯바늘로 정말로 대형 참치와 상어를 낚을 수 있을까? 여전히 의문이 든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 사용한, 놀라우리만치 흡사하게 생긴 낚싯바늘을 보면 조금 더 확신이 생긴다. 타이완과 일본 규슈 사이의 1200킬로미터 해역에는 1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이 있다. 이 류큐열도는 타이완이나 규슈와는 달리 빙하기에도 육지와 연결된 적 없디. 그런데도 여러 섬에 인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점이 웰라이시아 지역과 유사하다. 류큐열도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오키나와섬의 태평양 연안 동남부에서 사키타리 동굴 유적이 조사되었다. 약 3만 5000년 전에서 3만 년 전 사이에 호모 사피엔스가 살았던 곳인데, 큰고둥의 껍질을 갈아 만든 낚싯바늘이 발견되었다. 이 바늘의 제작 연대는 2만 3000년 전으로, 제리말라이 낚싯바늘과 비슷하거나 좀 더 오래되었다. 두 유적의 거리는 직선거리로 4만 킬로미터가 넘는다. 따라서 웰라이시아의 호모 사피엔스와 류큐열도의 호모 사피엔스가 동일한 무리이거나 자주 왕래했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그렇다면 당시 동남아시아 해역과 서태평양 연안 일대의 호모 사피엔스들에게 조가비로 만든 낚싯바늘은 일상적인 도구였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앞으로 동일한 모양의 낚싯바늘이 추가로 발견될 가능성 또한 높다. 나아가 이 낚싯바늘을 사용해 원양 어류를 잡았다면, 당시 사람들이 꽤 먼 바다를 반복해서 오갈 수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점에 주목한다면 한 가지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바로 ‘항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