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짠하지만 꿋꿋하게
수분이 없는 타르디그의 숨결에서는 “매캐한 먼지 냄새”(61)가 풍긴다. 유어가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동네에서 맡았던 냄새다. 시골 할머니는 유어를 붙들고 장녀의 덕목을 수시로 읊곤 했다. “엄마를 도와주고 동생을 돌보라”(61)는, 맏딸은 집안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잔소리였다. 먼지 냄새는 유어를 짓누르던 불합리한 말들을, “손끝에 염증이 생길 때까지 손톱을 물어뜯던”(62) 기억을 끌어낸다. 집에서 하도 ‘장녀’ 소리를 듣는 바람에 유어는 “식구들 일에 절로 팔을 걷어붙이는”(40) 병에 걸렸다. 지긋지긋하니 진저리가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맏이란 난치성 병증”(40)이라 쉬이 고쳐지질 않는다.
소설은 유어의 경험을 주의 깊게 묘사한다. 같은 딸이라도 부모님은 동생과 유어를 달리 대우하곤 했다. “동생은 늘 엄마 아빠에게 내 딸, 내 새끼라 말해지는 존재”(47)였지만 유어는 언제나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존재였다. 시간이 지나며 동생이 유어의 나이를 따라잡아도, 동생은 결코 유어 같은 요구를 받지 않았다. 냉대, 무관심, 질타는 한결같이 유어에게 쏟아졌다. 그리고 소설은 부모님이 둘을 차별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성별이나 출생 순서도 이유가 되지 못한다. 따져보면 유어는 동생이 태어나기 전부터 어른스럽기를 요구받았다. 동생으로 인해 장녀로 역할이 굳어졌을 뿐이다. 게다가 누구는 동생인데 형을 뒷바라지하라는 요구를 받기도 한다. 차별에는 이유가 없다. 소설은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 유어라는 인물에게 ‘K-장녀’의 굴레는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소설 초반에 엄마가 다짜고짜 ‘동생이 실종됐다’고 전화했을 때, 유어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도 결국 동생을 찾아 나선다. 유어는 이를 가족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마지막으로 수행하는 과제로 삼는다. 가족과 연을 끊고 싶어도 동생이 사라진 채로는 마음이 편치 못하기 때문이다. ‘장녀’에서 탈출해 ‘유어’가 되는 것은 오랫동안 유어의 지상과제였다. 타르디그로 사는 길이 열렸을 때에도 유어는 단호하게 거부한다. 불안정하고 가난하더라도 유어는 먼지가 아니라 ‘유어’다.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고 이를 갈았던 경험이 유어를 단단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유어는 장녀답게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다. 목에서 수증기를 토하는 사람을 보고 도망가는 대신 “괜찮으신가요?”라고 묻는 것이 유어의 성격이다. 유어 같은 사람들은 남의 곤경을 쉽게 외면하지 못하고, 괜히 사서 고생하고, 그러다 세계 멸망이나 인류의 위기를 막기 위해 싸우는 역할을 떠맡기도 한다. 비록 무기는 물총에 불과하더라도, 유어가 퍼덕거리는 모습은 하찮게 끝나지 않는다. 결코 먼지처럼 흩어지지도 않는다. “장차 용이 되어 메마른 황무지에 두루 물을 뿌릴 운명”(23)이라는 유어의 사주는 이렇게 들어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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