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30 사계절 시리즈: 봄
『말랑한 고고학』 김상태_6화
보이지 않는 도구의 힘, 상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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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한 것의 쓸모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들립니다. 딱히 이유는 없지만 좋아서 하는 일부터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물건을 모으는 취미까지 그 주제도 다양합니다. 사람은 먹고 사는 것을 넘어선 타산의 결과를 일상적으로 마주하고 그 다양한 상징들을 매개로 세상과 입체적으로 소통합니다. 언제부터 왜 이랬을까요. 가장 앞선 인류를 탐구하는 고고학은 근원적인 질문에 답하기 좋은 학문이며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초의 상징을 상상하며 이어지는 글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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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야기는 하나의 도구가 아닌, 이제까지 살펴본 도구들에 약간의 문화적 요소를 더한 것이다. 앞의 이야기에서 동굴 속 어둠을 걷어낸 등잔, 그 안에 안료를 사용하여 그린 오래된 벽화들에 관해 알아보았다. 거기에 실용적이지 않은(!) 도구 몇 가지를 더하면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인간의 인지발달 과정이 보이기 시작한다. 모아서 보면, 따로 볼 때와는 또 다른 차원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우리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들이 아주 오래전에 겪은 인지발달의 변곡점 하나를 되짚어보자.
변화를 암시하는 가장 대표적 도구로는 장신구를 들 수 있다. 왜 고고학자들은 장신구의 출현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할까? 다른 도구와 달리 장신구는 개인의 소유물인 동시에 그렇지 않기도 한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다. 이미 그 자체로 타인을 의식한 ‘이타성’ 물건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장신구는 철저한 진화적 산물인 인간의 몸을 사회적 도구로 전환해준다. 일종의 ‘인체의 문화화’라고 할 수 있다. 직접적인 신체 장식, 혹은 장신구 착용을 통해서 집단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드러냄과 동시에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다. 장신구의 이러한 기능은 바로 ‘상징성’에서 나온다. 인간은 몸짓이나 언어가 아닌 장신구 자체의 상징성만으로도 타인과 소통할 수 있다. 상징물을 통한 직관적 소통이 언어보다 훨씬 효과적인 경우도 많다. 올림픽 경기장을 떠올려보자. 그곳에서는 선수 각자가 사용하는 언어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유니폼에 인쇄된 국기만으로도 서로에 대한 이해가 시작된다. 상징의 힘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장신구는 인간 인지 능력과 집단의 성격에 모종의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암시하는 가장 강력한 고고학적 증거로 인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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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모로코 비즈무네동굴 조가비 장신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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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발견된 원시 장신구들에 대해서 살펴보자. 가장 이른 시기의 장신구는 아프리카 북서부 모로코Morocco의 비즈무네Bizmoune 동굴에서 출토되었다. 그곳에서 약 14만 년 전에 33개의 바다고둥에 구멍을 뚫어 만든 장신구가 발견되었다. [그림 1] 끈으로 고둥을 꿰어 사용하였으며, 미량의 붉은 안료도 확인되었다. 현재 유적은 해안선으로부터 12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하지만 과거의 해수면 높이를 감안하면 제작 당시에는 50킬로미터 거리였다고 추정한다. 비즈무네 사람들이 고둥을 얻으려면 직접 바다까지 갔다 오거나, 혹은 다른 무엇과 고둥을 교환했어야 한다. 바다고둥은 크기가 작아서 식량으로서는 가치가 거의 없다. 이런 점에 비추었을 때 애초에 장신구로 사용하고자 반입했다고 간주할 수 있다. 한편 이스라엘의 카푸제Qafzeh 동굴에서는 식용 조개의 일종인 글리시메리스Glycymeris로 만든 장신구가 발견되었다. 조개의 등쪽 각정Umbo 부위에 구멍이 뚫린 10여 개의 조가비를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니 붉은 안료와 끈으로 엮었던 흔적이 나왔다.
연구자들은 인간의 뇌는 곡선으로 된 물체에 호의를 느끼며, 그러한 특성 때문에 조가비를 장신구로 사용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육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둥글고 매끈한 바다 조가비류를 일상에서 자주 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이 조가비에 더욱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을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그 특별함에 어떤 ‘상징’을 더해 자신을 돋보이게 하거나 공동체의 소속감을 드러내고자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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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5만 년 전에 사용한 끈으로 추정되는 섬유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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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시선을 돌려서, 늘 장신구와 함께 등장하는 ‘끈’을 살펴보자. 십 수만 년 전, 조가비 장신구가 등장했을 무렵부터 끈도 존재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끈은 유기물이므로 오랫동안 보존되기 어렵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끈의 흔적은 프랑스의 아브리 뒤 마라스Abri du Maras 유적에서 나왔다. 5∼4만 년 전의 침엽수 섬유질 끈인데, 먼저 가느다란 식물성 섬유를 꼬아서 가는 실을 만든 뒤, 다시 세 가닥을 한데 꼬아 만들었다. [그림 2]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의 흔적은 흑해 연안 조지아Georgia에 있는 주주아나Dzudzuana 동굴, 프랑스의 라스코Lascaux 동굴 유적 등에서 확인된다. 라스코 동굴에는 진흙에 끈의 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흔적도 남아 있다. 높은 벽과 천정에 벽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사다리 형태의 구조물이 필요하며, 바로 그 사다리를 만들 때에도 끈을 사용했을 것이다.
또 다른 도구에서도 변곡점의 특별한 징후를 감지할 수 있다.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는 기하학적 무늬들이다. 기하학적 형태와 개념은 이미 주먹도끼로부터 출발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상 도구의 ‘효율’과 관련된 속성이므로, 상징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블롬보스Blombos 동굴의 무늬가 새겨진 안료 덩어리는 그런 면에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물건이다. 상당히 많은 양의 안료 덩어리를 동굴 내부에서 수습했는데, 그중 두 개에서 기하학적 무늬가 발견되었다. 연속해서 마름모꼴 무늬를 긋고, 그 위에 횡선을 세 줄 추가하여 상·중·하단을 구획했다. 이것은 어느 모로 봐도 의도적으로 새긴 흔적이다. 이 안료의 연대는 약 7만 7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그림 3의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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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블롬보스 동굴의 새겨진 안료와 디프클루프 동굴의 장식된 타조알 껍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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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고고학을 전공하고 전기 구석기 시대 뗀석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원도 양구군 상무룡리 유적 발굴을 통하여 본격적으로 구석기 연구를 시작했으며, 그 밖에 제주도 최초의 구석기 유적인 서귀포시 생수궤 등 여러 발굴에 참여했다.
1996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박물관 업무를 시작했으며, 이후 유물관리부와 고고부, 전시팀 등 여러 분야에서 일하며 관련 저술과 전시로 활동을 넓혔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제주박물관, 국립춘천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등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국립나주박물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최초의 진화 인류학 특별 전시 〈호모 사피엔스: 진화∞관계&미래?〉(2021년 5~9월) 등을 주관했다.
지은 책으로 구석기 시대에 관한 한국 최초의 교양 입문서 『단단한 고고학』, 구석기 시대에 인류가 사용한 도구를 연구한 『한국 구석기 시대 석기군 연구』와 『한국미의 태동 구석기·신석기』(공저), 박물관 큐레이터와 큐레이터 지망생을 위한 실용적인 유물 관리 지침서 『박물관 소장품의 수집과 관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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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말랑한 고고학』 잘 읽으셨나요? 물건이 상징이 될 때도 있지만 행위가 상징이 될 때도 있지요. 대부분 직장인일 독자 여러분에게 북뉴스를 읽는 행위가 긍정적인 상징이 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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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 🎱: 담당자
👀 라이너스
이 정도 수준의 글을 무료로 읽을 수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입니다. 책 나오면 꼭 살게요.
🎱
안녕하세요, 라이너스 님? <피너츠>의 주인공 라이너스와 닉네임이 같으시네요. 말씀도 비슷하게 하시는 것 같아요. 독자님의 피드백은 돈으로 환산이 안 될 정도로 소중합니다. 책 나올 때 잘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HYO
레이더스가 떠오르지만 실상은 많이 다르다고 들었어요. 고고학자가 꿈인 친구가 있었는데 문득 떠오르네요. 유독 땅만 보던 거북목 친구...... (<짱구는 못말려>의 나미리 선생님 남자친구가 고고학자였지요? 윤도현 엔딩 또르륵......)
🎱
HYO님 반갑습니다. 레이더스라면 역시 '인디애나 존스'일까요? 채찍을 들고 다니는 고고학자는 많지 않을 거예요. <짱구는 못말려> 윤도현 엔딩, 으아, 검색해보니 웃기면서도 슬프네요. 피드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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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랑 편집자랑 함께하는 명랑한 책 읽기 북클럽 ‘랑’이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를 찾아왔습니다!
* 이번 시즌부터 '랑 포인트'를 제공합니다. * 포인트는 제시한 미션(도서 구매 인증, 독서 퀴즈 참여, 북토크 참여 등)을 수행하면 제공됩니다. * 포인트를 모아서 '랑 스토어'(11월 오픈 예정)에서 사계절출판사의 도서와 교환할 수 있습니다.
📌함께 읽을 책: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
📌대상: 독자 누구나
📌독서 기간: 2023년 5월 30일(목)~6월 19일(수)까지
📌북토크: 2024년 6월 19일(수) 저녁 8시_온라인 zoom
📄신청 방법: 신청서 작성 후 제출해 주시면 문자로 카카오 오픈 채팅방 초대장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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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계급 천장'이 존재하는가?
계급은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또 언제까지 중요한가? 방송, 회계, 건축, 연기 등 엘리트 직종에 존재하는 ‘계급 천장’을 드러내는 책 『계급 천장』의 라이브 북토크입니다. 사회학자 조형근과 독립연구자 박권일의 한국의 계급에 관한 날카로운 통찰과 분석을 확인해 보세요. 이제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입니다.
📌 일시: 2024년 5월 31일 금요일 오후 8시
📌 채널: 유튜브 사계절TV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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