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을 참 잘도 쓰는 아이, 어린 시절 나는 그런 아이였다. 어른들은 걸핏하면 아주 작은 실수에도 ‘반성문을 쓰라’고 엄포를 놓았는데, 나는 그 ‘반성의 시간’을 ‘재미있는 글쓰기의 시간’으로 바꾸어버렸다. 어른들은 벌을 주었는데 나는 그 시간을 마음껏 즐긴 것이다. 이렇듯 글쓰기는 상황을 반전시키는 마력이 있다. 시작할 때의 마음과 끝낼 때의 마음이 너무 달라서. 글을 쓰는 동안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벌 받은 아이에서 저 혼자 신이 난 행복한 아이로. 구슬픈 마음에서 뭔가 은밀한 기쁨을 간직한 마음으로. 상처받은 아이에서 이제는 다 괜찮아진 건강한 아이로. 그렇게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분명히 변신했다. 반성문을 쓰다 보면 어느새 내 이야기에 도취되어 그것이 반성문인지도 잊고, 구구절절 파란만장한 나의 이야기를 묘사하느라 정신이 쏙 빠졌다. 처음엔 반성문이었는데 어느새 나는 내 간절함에 흠뻑 취해 나만의 이야기를 뚝딱뚝딱 빚어내느라 여념이 없어진 것이다.
그렇게 글쓰기는 나를 유쾌한 투명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글쓰기에 빠져 있을 때는, 나조차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마치 중력의 지배를 벗어난 샤갈의 그림 속 사랑에 빠진 연인들처럼. 삶의 무게를, 나라는 존재의 무게를, 타인의 시선에서 오는 부담감을 내려놓게 된다. 글쓰기는 기억력을 강화하고, 사소한 추억까지도 소중한 의미로 물들게 한다. 글쓰기는 인간을 ‘나’로부터 시작하여 ‘우리’를 향한 거대한 연결로 이끈다. 게다가 글쓰기는 종이와 펜만으로도, 그 어떤 경제적 부담도 주지 않고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한다. 이런 식으로 나는 ‘글쓰기가 몸에 좋은 101가지 이유’를 밤새도록 나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무엇보다도 타인의 글을 읽고, 나의 글을 쓰고, 그리고 글쓰기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다 보면, 어느새 내 좁은 세계를 뛰어넘어 ‘온 세상과 연결되는 거대한 문해력의 네트워크’로 진입하게 된다. 나는 결코 외따로 떨어진 고립된 존재에 그칠 수 없음을, 글쓰기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 ‘복잡하고 거대한 이 세계의 그물망’의 한 그물코를 담당하는 나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 작가 정여울
매일 읽고 쓰는 사람.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듣는 사람. 힘없고 소외받는 사람 곁에 서려는 사람. 어두운 시대, 버릴 수 없는 희망의 잉크를 가득 머금은 글을 쉼 없이 쓴다. KBS라디오 ‘이다혜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살롱드뮤즈’,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을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문학이 필요한 시간』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끝까지 쓰는 용기』 『공부할 권리』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헤세로 가는 길』 『빈센트 나의 빈센트』 『내가 사랑한 유럽top10』 『마흔에 관하여』 『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 『월간 정여울』(전 12권) 『마음의 서재』 등 다수가 있다.
이어서 보셨다면 읽으셨겠지만, 이어서 나오는 단락은 '글쓰기, 그럼에도 세상에 나의 자리가 있음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각 문단의 끝을 인용하면, 글쓰기란 나를 구원하고, 지켜주며, 내게 기회를 주는 일입니다. 어디서부터 이 일을 시작하면 좋을까요. 북뉴스 피드백 작성부터 해보면 어떨까요?
👀: 독자 | 🎱: 담당자
👀: 잊고 있었는데 깨끗한 일기장이 책상에 가득해요. 책장에는 안 읽은 책도 많고요. 방에 다 쓴 공책과 다 읽은 책만 있게 하려고요.
🎱: 깨끗하게 남김없이. 씨익. 셰프의 미소. 앞으로도 잘 읽어주세요!
👀: 책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연재글 읽으면서 유년 때 연필로 또박또박 쓴 글, 사춘기 때 볼펜으로 휘갈겨 쓴 글, 회사에서 키보드로 두들긴 메일 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네요. 저도 잘 쓰고 싶어요 ^0^!
독자 여러분, 천천히 읽어주세요. 그리고 연재를 읽고 드신 생각이 있다면, 또 정여울 작가님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후기에 남겨주세요. 이전에 주신 기대의 말들은 잘 전했습니다. 그리고 때마다 차곡차곡 모아 또 전하겠습니다. 짧게나마 남긴 말들도 상상 이상의 커다란 힘이 될 거예요. 책은 독자가 완성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