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라보는 작가님의 관점을 요약한다면 어떤 것일까요?” 너무 어려운 질문이지만, 꽤 자주 받는 질문이기도 하다. 어떻게 그런 걸 요약하나요. 여러분은 ‘나’라는 존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나요. 너무 어려운 질문에는 이렇게 반문하고 싶지만, 요즘은 그래도 ‘반문하고 싶은 심정’을 꾹 누르고 어떻게든 주어진 질문에 대답하려 애쓴다. 독자들의 답답한 심정을 이해하기에.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무척 복잡하고 요약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변치 않는 일관성은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삶을 살아내는 것. 나는 지상의 모든 슬픔에 매혹되는 사람이지만, 결코 슬픔에 지지 않는 인간의 안간힘에 더욱 매혹된다. 아무리 나쁜 상황에서도 슬픔을 이겨내며 최선의 길을 찾아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나 또한 그런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아름다움의 길, 타인의 슬픔과 함께하는 길,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길을 걸어가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다 보면 그런 글을 쓰게 된다. 그래서 내 글에는 항상 ‘온갖 고생을 사서 자처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나는 그렇게 고통을 피하지 않고 고통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려 하는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이 흠뻑 반하는 사람이니까.
작가로서의 나는 기어코 슬픔을 채집하는 사람이다. 어떤 장소에 방문하면 그 장소를 할퀴고 간 슬픔의 총량을 재고, 그 슬픔을 끝내 이겨낸 사람들의 목소리를 남김없이 기록하고 싶다.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알기 위해 가슴에 청진기를 대거나 손목의 맥을 짚어보듯이. 나는 장소에 새겨진 슬픔, 사람의 몸속에 쟁여놓은 슬픔을 남김없이 알아내어 그 슬픔을 내 상상 속에서라도 겪어내보고 싶다. 비속어 중에 ‘따라쟁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 말이 참 좋다. 남의 몸짓과 감정을 따라 하고, 흉내 내고, 본뜨다 보면, 어느새 나 아닌 또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생긴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쓰라린 슬픔의 수집가로 살다 보면 그 슬픔의 뒷면에 배어 있는 믿을 수 없이 환한 미소도 함께 끌어안게 된다. 슬픔을 달관하고 난 사람들의 표정 뒤끝에는 언제나 ‘그래도 나는 이 삶을 사랑한다’는 뿌듯함을 닮은 환한 미소가 배어난다.
내 기억 속에서 첫 번째 슬픔의 채집가는 나 자신이었다. 내가 열과 성의를 다하여 쓴 첫 번째 글은 엄마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가 엄마를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하지만 그럼에도 엄마의 사랑을 얼마나 간절히 갈망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 나이 만 8세 때 생애 최초의 교내 백일장이 열렸는데, 아직도 나는 그 글을 기억한다. 빨간색 선이 그어진 원고지에 꾹꾹 눌러쓴, 어린아이의 손 글씨가 ‘내 첫 번째 문해력의 시험장’으로 기억된다. 어버이날, 엄마에게 어여쁜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싶었는데 꽃을 너무 늦게 만들었다. 나는 중요한 일을 할 때마다 더욱 느려지는 아이였다. 숙제 같은 것은 후다닥 해치우고 싶었는데, 뭔가 정성을 다하고 싶은 일 앞에서는 신기하게도 미학적인 허영심 같은 것이 발동했다. 나는 엄마의 가슴에 달아드릴 카네이션만은 ‘후다닥’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정성스럽게, 열과 성의를 다하여, 세상에서 가장 어여쁘게’ 만들어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아직 나에겐 용돈 같은 것은 없었던 시절이라 아무런 선물도 준비하지 못해 마음이 아팠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종이로 카네이션을 어여쁘게 만들 수만 있다면 엄마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다. 몇 번이나 색종이가 구겨지고, 종이꽃이 망가지고, 다시 한번 새롭게 종이꽃을 피워내기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조금은 마음에 드는 새빨간 카네이션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그날 매우 피곤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아직 날이 저물지도 않았는데 잠들어버렸다. 이날이 지나면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의미가 없어지기에, 나는 살금살금 잠든 엄마에게 다가가 몰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기로 했다. 나는 엄마를 무서워하는 딸이기에 그 순간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엄마가 ‘카네이션이 안 예쁘다’고 할까 봐. ‘뭐 이딴 걸 달아주냐’고 할까 봐. 그런데 여덟 살 소녀의 꽃 달아주는 솜씨는 형편없어서, 게다가 잠든 엄마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일은 너무도 떨리는 일이라, 어설프게 만들어낸 종이 카네이션에 달린 옷핀이 엄마의 가슴을 찌르고 말았다.
“앗, 따가워라! 이게 뭐이고!”
잠에서 화들짝 깨어난 엄마의 사투리가 안방에 날카롭게 울려 퍼지자 겁에 질린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게 아니고, 엄마, 엄마를 아프게 하려던 게 아니고, 오, 오늘 어버이날이라서 엄마한테 카네이션 달아주려고 그랬어.”
나는 서럽게 울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엄마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엄마의 그 뽀얀 살결에 날카로운 옷핀이 스쳐가 핏방울이 묻은 것도 개의치 않은 채 나를 꼭 안아주었다. 빨간 카네이션보다 더 빨간 핏방울이 엄마의 새하얀 가슴팍에서 배어 나왔다. “엄마, 엄마, 정말 미안해.” 엄마는 웃으며 괜찮다고 말해주며 나를 더 꼭 안아주었다. 그때 우리 엄마 냄새는 참으로 좋았다. 우리 엄마, 향긋하고 달콤한 우리 엄마 냄새. 나는 그제야 엄마 품에 안겨 두 다리 쭉 뻗고 펑펑 울었다. 그날의 이야기를 백일장에 써서 나는 생애 최초의 상을 받았다. 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한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어리둥절했다. 그냥 내 마음이 가는 대로 글을 썼는데, 그것이 왜 상을 받을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 자랑이 아니라, 그런 사소한 이야기가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아이의 솔직하고 꾸밈없는 고백이 백일장 심사 위원인 선생님들의 마음을 움직였나 보다. 나는 그날의 글쓰기를 통해 엄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조금은 극복했을 뿐 아니라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나의 어설프지만 소중한 문해력의 씨앗이 싹트는 순간이었다.
이 사건은 내 인생에서 장애물을 극복하는 하나의 원형적인 패턴을 이룬 원체험이 되었다. 나는 ‘슬픔이나 고통의 발생, 문제의 원인 발견, 그 문제를 탐구하는 글쓰기, 부끄럽지만 내 글을 타인에게 보여주기, 타인이 내 글을 읽음으로써 내 문제에 공감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라는 패턴을 발견해낸 것이다. 나는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글쓰기라는 내 마음속의 ‘전략 상황실’을 가동함으로써 문제를 파악하고 문제를 숙고하고 마침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닫는 과정을 반드시 글로 표현함으로써 살아남았다. 나에게 문해력은 스펙이나 경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좋은 글을 읽어야만 에너지가 충만해지고, 좋은 글을 단 한 문장이라도 쓸 수 있다면 나의 보잘것없는 하루가 아름답고 향기로운 그 무엇으로 변신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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