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요 작가 인터뷰 VOL.96 인터뷰: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단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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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측정할 수 없지만 많은 것을 가늠케 하는 지표들이 있습니다. GDP나 국제유가, 수능 성적 등 각 지표는 측정 대상의 일부만을 결과적으로 묘사할 뿐이지만 사람들은 거기서 아주 많은 것을 유추하곤 합니다.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는 전 지구인이 같은 지표로 측정되는 초유의 사태를 담고 있는 '페이크 르포' 형식의 소설입니다. 모든 사람들 머리 위에 천국 또는 지옥에 갈 '확률'을 표시한 '수레바퀴'가 나타나면서 세계의 풍경이 바뀝니다. 적과 청색으로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사후 행선지 결정 확률은 역사상 그 어떤 지표보다 세계를 흔들어놓습니다. 해묵은 철학적 질문과 기후위기, 전쟁 등 당면한 현실의 과제를 더는 외면할 수 없게 됐을 때 인간과 세계는 그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인터뷰는 작가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작품에 관한 많은 것을 유추하게 합니다. 맘껏 상상하세요. 제3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자, 단요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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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단요 장편소설
단요
사람 한 명과 함께 강원도에서 살고 있다. 사람이 사람이라서 생기는 이야기들을 즐겨 쓴다. 2022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청소년 성장소설 『다이브』와 『마녀가 되는 주문』, 금융소설 『인버스』를 썼다. 『개의 설계사』는 2023 문윤성 SF 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 수상작이고, 같은 해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로 3회 박지리문학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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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도에 『다이브』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1년 좀 넘는 시간 동안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까지 무려 4권의 책을 연달아 출간했습니다.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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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히려 신인이다 보니 템포를 올리기가 용이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리기를 할 때, 초반에는 속도를 올리지만 후반 구간에서는 발걸음이 느려지는 것처럼요. 작가로서의 업은 단거리보다는 마라톤에 가깝다 보니, 이 책이 속도를 조절하는 기점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잘해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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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초 박지리문학상 수상 소식을 전할 때 담담하게 문윤성 SF 문학상 대상 수상 소식을 전날 연락받았다고 대답하셨지요? 수상을 미리 예상하셨는지요? 또 동시에 2관왕이 된 기분은 어떤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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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은 ‘이렇게 됐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고, 안도감도 조금 있었습니다. 첫 책 『다이브』를 출간할 때 작가 소개란이 너무 휑해서, 교보 PD님께 1년 안에 문학상을 두 개는 받아야겠다고 말씀드렸었거든요. 허장성세로 끝나는 대신 다짐대로 되었으니 다행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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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레바퀴는 각자의 직분과 영향력에 따라 비율이 달라지잖아요. 사이코패시나 폭력 성향의 사람들은 기본만 잘 지켜도 가점이 되고요. 수레바퀴에 이런 상대적인 판단을 부여한 것은 어떤 이유인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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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주신 것처럼 수레바퀴는 두 가지 측면에서의 유연함을 보입니다. 하나는 사람의 처지와 능력에 따라 다른 점수를 매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점수에 대한 최종적인 계산이 ‘확률’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전자는 납득이 쉽습니다. 국회의원이 할 수 있는 일과 청소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다르고, 건강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만성 질환자가 할 수 있는 일도 다르니까요. 만약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채점 기준을 부과한다면 그건 정의가 아니라 엄청난 불공정일 것입니다.
다만 후자는 악질적으로 읽힐 여지가 많고,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럴 것입니다. 죽을 때 단 한 번 수레바퀴를 돌려서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것은 그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도박일 테니까요. 선행을 많이 쌓은 사람이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수레바퀴의 청색 비중이 95퍼센트, 적색 비중이 5퍼센트라면, 이 사람은 죽을 때 5퍼센트의 확률로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20번 중 한 번은 그런 일이 일어나고, 전 세계에는 80억 명의 사람이 있습니다. 도무지 안심할 수가 없겠죠.
그리고 이 ‘안심할 수 없음’이야말로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를 성립시키는 요소입니다. 예컨대 청색과 적색의 비중에 따라 연옥의 구성요소가 조절되는 세계라면, 사람들은 청색 비중을 80퍼센트까지 높이는 것만으로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혹은 평균치인 65퍼센트에 만족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면 99퍼센트의 청색 비중을 가진 사람조차 100퍼센트를 얻어내려 애쓸 것입니다.
즉 작중의 사람들이 안심하는 대신 치열하게 문제에 맞서기 위해서는, 거기에 따라 세계의 각 요소들이 새로운 형태로 배열되기 위해서는 그 불안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건 수레바퀴의 의지이기도 하겠지요(안심하지 말고 계속 두려워하고 노력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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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의 수레바퀴가 작가님 머리 위에 있다면 청색 비율이 얼마 정도 될 것 같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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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보통 자기객관화에 어려움을 겪고, 그건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긍정적인 편향을 경계하다 보면 과도하게 부정적인 관점을 지니게 되고, 그렇다고 해서 경계하지 않으면 너무 긍정적으로만 생각하게 되지요. 그렇다 보니 제 수레바퀴가 어느 정도일까 예상해보진 않았고요, 다만 어떤 성적표가 나오든 겸허히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다만 (정말로 수레바퀴가 나타난다면) 그 후에는 작중의 화자처럼, 각각의 사람들이 수레바퀴에 대응하는 모습을 살피며 르포를 쓰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청색 영역을 올리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을 듯하고요. 굳이 가외의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수레바퀴가 평균치에만 근접하기만 하면 65퍼센트의 확률로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65퍼센트라면 걸어볼 만한 도박이지요. 이렇게 말하면 수레바퀴가 싫어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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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속 인터뷰어 ‘나’는 작가님의 실제 모습에 많이 부합하는 편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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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말은 아니지만 묘하게 얄미운 질문’을 던져서 인터뷰이들을 언짢게 만든다거나 하는 면모는 제 성격을 조금 닮았습니다. 예를 들면 작중에는 P라는 수학과 교수가 등장하는데, 이 사람은 ‘수레바퀴가 요구하는 정의’를 중심으로 재편되어가는 세상에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히 정의나 윤리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면 놓치는 부분이 생기게 됩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명화나 브루크너 교향곡 음반은 아름답지만 도덕과는 큰 관련이 없어 보이지요(그리고 만약 환경오염을 고려한다면, 어떤 종류의 예술이나 문화산업은 악에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특정한 종류의 순수 학문 연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작품 속 인터뷰어 ‘나’는 그 사실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의문도 솔직하게 털어놓지요.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스럽지만, 순수수학은 원래 관심도가 떨어지는 분야 아니었나요? 뭐랄까,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돈이 벌리는 것도 아니고….” (본문 117~118쪽)
그게 논리적으로 틀린 말이 아닐지라도, 보통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분위기를 망칩니다. 물론 저는 분위기를 망치거나 친구를 잃는 상황은 피하고 싶기 때문에 말조심을 하지만, 가끔은 쓸데없이 솔직한 질문을 하고 싶어지지요. 한편 이런 성격은 현실에서는 큰 쓸모가 없지만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데에는 꽤 유용하지요. 슬랩스틱 코미디의 주인공과 같이 다니는 건 싫어도, 그걸 화면 너머로 구경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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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인물들이 펼쳐 보이는 윤리학, 정치철학적 입장과 함의는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조목조목 짚고 있습니다. 다양하고 방대한 참고자료를 활용하셨는데 평소에 이런 공부를 많이 하시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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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세계에서의 노동 착취나 환경오염 같은 사안에서, 기업의 비윤리성을 지적하는 사람이 있으면 “회사가 자선단체냐? 회사의 목적은 이윤 추구다. 회사는 합리적으로 행동했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구도에서 볼 수 있다시피 도덕성과 합리성은 종종 대립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런데 도덕성이 언제나 합리성과 반대되는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합리성’을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양심의 가책을 피하려는 것이든, 타인의 비난을 피하려는 것이든 간에 도덕적 동기는 결국 이기적인 것으로 환원됩니다. 따라서 도덕성은 합리성의 문제다’라는 주장 또한 있지요. 참, 여기서 말하는 합리성이란 도구적 합리성(instrumental rationality), 즉 자기 이익의 극대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일관적이고 타당한 전략을 수립하려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어쨌거나 도덕성과 합리성은 묘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에 따라 둘의 관계는 오래도록 고찰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은 『윤리학과 경제학』이라는 저술을 통해 두 학문 분과의 접점을 찾고, 고티에나 하사니 같은 철학자들은 도덕적 선택을 합리적 선택의 일부로 간주합니다.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가 묘사하는 세계 또한 이러한 테마의 연장선에 놓여 있습니다. 만약 정의로운 일이 타산과 자기 이익에 직결된다면, 그리고 그 연결고리가 ‘초현실적인 방법으로’ 실증된다면, 아직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겠느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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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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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다양한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글이다 보니 다양한 감상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온전히 즐거울 수는 없겠고 씁쓸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 모든 감상을 합해 흥미로운 글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또, 여기에 담긴 사고실험이 깊은 고민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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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인데 폭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광고 카피가 떠오릅니다. '우리의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같이 유치한….
갈 때 가고 올 때 오기. 늘 그렇듯 어긋나고서야 질서가 있었구나 싶지요. 너무 많은 것이 변하고 있는 요즘이지만 사계절 북뉴스는 어쨌든 매주 목요일마다 발행되고 있습니다. 언젠가 갈 때가 올 때까지, 잘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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