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7 사계절 시리즈: 봄
『도시의 동물들』 8회_백로 : 다시 돌아오려는 백로와 다시 쫓아내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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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다 오니 없어졌다. 백로의 이야기입니다. 『도시의 동물들』 여덟 번째 글. 동물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백로 배설물에서 나온 강한 요산 때문에 죽은 나무의 반대편에는 여름 햇살에 뜨겁게 달궈진 아파트가 빽빽한 창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그 안에는 어쩌다 보니 백로를 미워하게 된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해마다 같은 곳으로 날아와 번식하는 동물들이니 작년에 둥지를 지었던 나무가 없어지면 다른 곳으로 갈 줄 알았는데, 그런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결국엔 백로가 없어지기를 바라지만 손에 직접 피를 묻히는 것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것일까? 백로의 입장에서는 서서히 번식지를 파괴하며 삶을 조여 오는 압박이 죽음보다 더 큰 시련일 수도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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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_다시 돌아오려는 백로와 다시 쫓아내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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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마을에는 학이 살았을까?
교과서에 수록되곤 하던 「학마을 사람들」(이범선, 1957)이라는 소설이 있다. 여기서 학(鶴)은 두루미를 일컫는 말이다. 소설 속 마을 뒷산 나무에 둥지를 튼 새를 두루미라고 한 것인데, 두루미는 한국에서 번식하지 않을뿐더러 더러는 나무 위가 아니라 땅바닥에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는다. 아마도 옛사람들은 황새나 백로, 왜가리처럼 목과 다리가 긴 새를 묶어서 ‘학’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지금처럼 칼 폰 린네의 방식(종, 속, 과, 목, 강, 문, 계의 분류 방식)으로 종을 나누기 전의 일이다. 얼핏 생각하기에 옛사람들이 우리보다 야생동물에 더 친숙했을 테니 알기도 더 잘 알았을 것 같지만, 그 앎은 지금과는 다른 필요로, 다르게 구성되었다. 그 시절 민중은 호랑이와 표범을 묶어서 범이라고 불렀고, 스라소니를 호랑이 새끼로 여기기도 했다. 호랑이든 표범이든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을 잡아먹는 동물이었으니 위험하기로는 별 차이가 없는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요즘도 동네 이름에 흔히 붙는 ‘학(鶴)’ 자는 민가 주변에 가장 흔한 백로과 동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야트막한 언덕과 하천의 경계는 사람이 농사짓고 살기도 좋았고, 백로가 물에서 먹이를 구하고 높은 나무에 둥지를 틀기도 좋았다.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 잠을 청하는 밤이면 백로들도 나무 둥지에 올랐고, 해가 뜨면 사람도 백로도 물이 있는 평지로 일하러 나갔다. 높은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여름마다 집단으로 번식하는 백로과 새들은 확실히 마을의 풍경을 이루는 표지였을 것이다. 어쩌면 초여름 뒷산에 하얀 새들이 몰려드는 모습이 동네의 자랑거리였을지도 모른다. 집단 번식하는 백로를 쫓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없던 시절, 그러기보다는 마을 이름을 ‘학마을’로 짓던 시절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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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백로’라고 부를 때 그 새는 어떤 새일까?
백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백로가 어떤 새인지 공부를 좀 했다. 쌍안경으로 가까이 들여다봐도 늘 누가 누구인지 헷갈리는 새인데, 우리가 ‘백로’라고 하면 보통 하얗고 긴 새 몇 종을 동시에 부르는 셈이다. 백로라는 이름이 붙은 새로는 몸길이가 작은 순으로 쇠백로(Egretta garzetta), 노랑부리백로(Egretta eulophotes), 중백로(Egretta intermedia), 중대백로(Ardea alba modesta), 대백로(Ardea alba)가 있다. 이들은 백로과(Ardeidae)에 속하는 새들이다. ‘에그레타Egretta’라는 속명이 붙은 쇠백로와 중백로는 백로속이고, ‘아르데아Ardea’라는 속명이 붙은 중대백로와 대백로는 왜가리속이다. 그래서 중대백로와 대백로는 왜가리와 더 가까운 친척으로 본다. ‘아르데아’라는 라틴어가 왜가리를 뜻하기 때문에 왜가리과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 라틴어로 된 학명은 과학자들의 합의에 따라 계속 바뀌기도 하고 그것을 국문으로 바꾸는 원칙도 그때그때 달라서 꽤 혼란스럽다. 이 글에서는 요즘 나온 한국어 논문들을 참고해 아르데아과의 새들은 백로과 혹은 부르기 쉽게 ‘백로들’이라고 하기로 했다. 이렇게 보면, 목과 다리가 긴 새를 모조리 묶어서 학이라고 부르던 시절과 비교해 동물에 대한 우리의 인지가 나아지긴 했나 싶기도 하다.
백로과에는 하얀 새뿐 아니라 왜가리나 해오라기처럼 여러 가지 빛깔을 내는 다양한 새들이 포함된다. 겨울 철새인 대백로를 제외하면 백로들은 원래 여름 철새로, 봄이 되면 남쪽 나라에서 한국을 찾아와 둥지를 짓고 번식한다. 그런데 기후변화 때문인지 1990년대 후반부터 겨울이 되어도 떠나지 않는 백로들이 많아졌다. 한국에 날아오는 백로과만 해도 18종이나 되니 여기서 그 각각을 다 설명할 수는 없고 그 가운데 왜가리, 중대백로, 쇠백로 정도라도 그 특징을 알고 구분하려 노력해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이 세 종류가 도심의 하천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백로들이다. 왜가리는 제일 크고 머리에 검은 두건을 썼으며 몸 전체가 대체로 회색인 새이고, 중대백로는 왜가리만큼 큰데 하얀 새이다. 그리고 쇠백로는 왜가리 반만 한 하얀 새이다. 동네 하천에서 이들 가운데 하나를 만나면 셋 중에서 누구인지 궁금해하시면 좋겠다. 누군지 아는 것은 관심의 첫 단계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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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최태규
동물복지학을 연구하는 수의사이자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로 일한다. 『일상의 낱말들』(공저), 『관계와 경계』(공저), 『동물의 품 안에서』(공저) 등을 썼다.
📷사진_이지양
순수 미술과 미디어를 전공한 시각 예술가이다. ‘당신의 각도’ 전시를 계기로 『사이보그가 되다』에 사진으로 참여했고, 이후 『일상의 낱말들』, 『아무튼, 메모』, 『1만 1천 권의 조선』 등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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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북뉴스는 7월 13일(목)에 발행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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