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5 사계절 시리즈: 봄
『도시의 동물들』 7회_너구리 : 가까이 살지만 보이지 않는 야생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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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규 작가님의 일곱 번째 글입니다. 이번엔 너구리가 주제인데요. 너구리를 비롯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도시의 동물들. 그들을 위한 의식적인 무관심, 정제된 연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조리 사라질 줄 알았던 도심의 야생동물들은 빽빽한 인공 구조물과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생존을 위한 틈을 찾아내 결국 살아남았던 것이다."
"동물 개별 개체의 수준에서 보자면, 야생동물에게는 무관심이 필요하기도 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무관심’은 그들을 건드리지 않고, 그들이 곁을 지나도록 그냥 두는 것이다."
참 미묘하지요. 곱씹어 읽기 좋은 『도시의 동물들』. 이번에도 잘 읽어주세요. : )
ps. 아래 이미지는 최근에 이지양 작가님이 최태규 작가님 댁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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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 : 가까이 살지만 보이지 않는 야생동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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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옆 숲속의 너구리
2년 전 여름, 지금 사는 집으로 막 이사를 왔을 때 이상하게 밤만 되면 개가 지르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개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아직 동네에 적응하지 못한 터라 괜한 의심이 많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어느 집에서 나는 소리인지 알아보려고 귀를 기울였다. 개가 내는 특유의 ‘깨갱깽’ 소리와 달랐다. ‘꺄갸갸갸’ 하는 소리였다. 게다가 소리는 집 바로 옆의 숲에서 들렸다. 손전등을 비춰 보니 너구리(Nyctereutes procyonoides)였다. 그 숲길은 사람들이 산책하며 너구리가 먹을 만한 것들을 많이 흘리고 가는 곳이었다. 번식기도 지난 때였으니 그 날카로운 소리는 분명 너구리들이 그 쓰레기를 먹겠다고 다투는 소리였을 것이다. 너구리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의사소통하는 소리를 그때 처음 들었다. 요즘도 우리 집에서는 해 질 녘부터 자정까지 종종 너구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서울에서 아파트 창문 밖으로 너구리를 볼 수 있는 집이라고 하면 특별한 경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도심에는 생각보다 많은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 우리의 관심이 미치지 않아 보이지 않을 뿐이다. 나 역시 개 소리와 너구리 소리를 구분할 수 없었다면, 창문을 열고 너구리를 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뭉뚱그려 ‘새’ 혹은 ‘벌레’라고 부르는 다양한 동물은 물론이고, 개나 고양이 같은 포유류도 여러 종류가 이 거대한 도시에서 함께 살고 있다. 화단을 빠르게 지나는 족제비, 베란다 어느 구석에 붙은 안주애기박쥐, 한강 둔치의 고라니와 삵, 수달은 모두 우리와 함께 도시의 삶을 사는 야생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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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가 먹고사는 일
너구리는 만만한 음식인 라면에 이름이 붙을 정도로 흔한 동물이다. 한반도에 사는 다른 육상 포유류와 비교해 새끼를 많이 낳고, 행동권(동물이 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정한 공간)이 좁아서 개체 수가 많다. 제법 사냥을 잘해서 개구리나 쥐, 두더지 같은 작은 동물을 잡아먹기도 하고, 물속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물고기도 잡아먹는다. 새알을 주워 먹거나 식물의 열매, 잎, 줄기, 뿌리까지 모두 먹어서 에너지원으로 쓰는 동물이다. 이런 특성 덕분에 ‘쥐잡기 운동’이 만연해 쥐를 포식하는 여우가 멸종할 때도 너구리는 살아남았다. 물론 너구리 가죽이 여우 가죽보다 값싸서 의도적인 포획이 적었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깊은 산속보다 산 아래 저지대를 선호하는 너구리는 인간과 서식지가 겹친다. 민가 근처까지 와서 가장 영양가 높고 구하기도 쉬운 인간의 음식물 쓰레기를 즐겨 먹는다. 요즘은 도심에 널린 고양이 사료도 너구리의 식단에 자주 오르는 것 같다. 너구리는 고양이보다 몸집이 확실히 크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고양이를 공격하지 않는다. 육식동물인 고양이를 굳이 공격해 스스로 다칠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그것은 고양이도 마찬가지라서 두 종은 도심에서 낮은 수준의 경쟁자로 함께 사는 것 같다.
당연하게도, 인간이 의도적으로 이 두 종에게 먹이를 주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정 종의 수를 불리는 일이고, 그 결과로 그들이 포식하는 종을 감소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이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앞뒤를 재지 않는 동정심은 독이 된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이 유행하면서 고양이 사료를 영양원으로 이용할 수 있는 다른 동물들까지 고양이 밥자리에 모이고 있다. 너구리를 비롯해 비둘기, 까치, 까마귀, 물까치 같은 종들이다. 상대적으로 사람에게 경계심을 덜 느끼고 육식이 가능한 잡식종들은 고양이와 먹이를 공유하며 도심 생활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간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이익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개체 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경쟁과 싸움도 치열해지고, 그들의 몸과 환경이 이루고 있던 균형이 깨지면서 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던 질병이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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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최태규
동물복지학을 연구하는 수의사이자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로 일한다. 『일상의 낱말들』(공저), 『관계와 경계』(공저), 『동물의 품 안에서』(공저) 등을 썼다.
📷사진_이지양
순수 미술과 미디어를 전공한 시각 예술가이다. ‘당신의 각도’ 전시를 계기로 『사이보그가 되다』에 사진으로 참여했고, 이후 『일상의 낱말들』, 『아무튼, 메모』, 『1만 1천 권의 조선』 등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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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북뉴스는 『단단한 고고학』 김상태 작가 인터뷰였습니다. 여러 독자들이 기대평을 남겨주었는데요. 그중 하나를 소개해드립니다! (기대평 남겨주신 분들 중 당첨자 분들께는 미리 안내해드렸습니다. 다음 기회에도 꼭 참여해주세요!)
🎈태리
작가님 인터뷰 읽다가 찔리는 문구가 있더라구요. 구석기 진열장을 휙 지나가버리는 관람객이었던 1인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너무 먼 과거의 흔적이라 정말 이게 유물일까, 어떻게 발견했을까 그 가치를 알아채지 못했던 것 같아요. 어릴 적에 많이 본 애니메이션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과 2013년에 나온 드림웍스 신작 <크루즈 패밀리>가 떠오르네요. 불 하나로 힘이 센 육식 동물들을 물리치려고 하고, 돌을 깎아서 만든 도구로 가족을 지키는 장면들이 생각나네요. 작가님 인터뷰를 읽다보니 『단단한 고고학』 읽으면 가장 먼저 구석기관을 방문할 것 같네요. 기대됩니다!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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