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PC로 북뉴스를 읽고 계신가요. 한번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클릭, '검사'(또는 '페이지 소스' 보기) 버튼을 선택해보세요. 이 페이지를 구성하고 있는 코드들을 볼 수 있습니다. 현미경을 보듯, 이면에 담긴 다양한 데이터들을 확인할 수 있지요. (가끔 낙서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어원을 공부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 듯합니다. 사람은 세상을 언어로 이해하고 만들어 나갑니다. 그렇기에 문자의 기원을 찾아가는 일은 삶을 깊이 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한자의 풍경』이라는 책을 다룹니다. 책을 읽기 전, 한자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 책은 최초의 한자에서 몇천 년에 이르는 시간, 한자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이 무엇을 공유하며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소개합니다. 한자로 그려진 풍경을 상상해보는 시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2천 년 전 사상가들이 남긴 치열한 고민을 현대에 유효한 것으로 쉽게 알아듣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의 단어로 다시 풀어주어야 합니다."
이승훈 교수 인터뷰입니다.
🍀기대평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유심히 살핀 후 북뉴스 하단의 안내에 따라 참여해주세요.
✍ 이승훈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 교수이다. 중국 수사학 전공을 바탕으로 중국의 문자, 고전, 문화사 등 전방위 분야를 탐사하며 옛 글과 문자에 담긴 깊은 사유를 현대와 잇닿게 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일반지식은 물론 전문 자료를 모은 개방형 디지털 아카이브 중국학 위키백과를 구축하였다.
🎱 평소 '한자' 하면, 소수 전문가의 연구 영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자의 풍경』으로 포기, 결핍, 추천, 법 등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아는 재미를 느꼈습니다. 지금, 왜 우리에게 한자 이야기가 필요할까요?
✍ 대학에서 한자 관련 수업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점은 요즘 학생들에게 한자는 점점 낯선 이국의 문자가 되어간다는 점입니다. 한자를 모르더라도 생활하는 데 크게 불편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공들여 배우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로 갈수록 한자에 대한 절실함이 크지 않다는 사실이 반드시 우려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 말과 글로 사유하고 표현할 수 있는 지적 환경이 완성되었다는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동안 우리 문자 생활의 중심에 있던 한자는 전문가들의 연구 대상으로 좁혀지고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한자는 우리와 무관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우리가 추상적이고 복잡한 사유를 하는 데 사용하는 개념어들이 대부분 한자어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마냥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한자는 어쩌면 서양 사회의 라틴어의 위상과 비슷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라틴어를 모르더라도 생활에 불편은 없지만, 서구적 사유의 근원을 이루는 개념들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동양 고전에서 비롯한 한자어 개념어들은 우리의 한학 전통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은 사용하지 않거나 옛날 분위기를 풍기는 것들이 적지 않지요. 큰맘 먹고 고전을 읽어보려고 해도 마주치는 낯선 단어들에서 부담을 느끼면서 몇 장 넘기지 못하고 그냥 서가에 꽂아두게 됩니다. 고전이란 현재 나의 삶에 유효한 질문과 답을 주기 때문에 생명력을 갖는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먼지만 쌓여 외면받던 동양 고전을 우리 삶으로 다시 불러오려면 먼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단어로 쉽게 풀어주어야 합니다. 공자는 높은 수준의 추상적인 담론을 쉬운 이야기로 풀어낸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제자들이 그의 재미난 이야기를 문자로 다 담아내지 못했을 뿐입니다. 맹자는 진리는 간략하고 쉬운 말 속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쉽고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복잡한 개념으로 굳어지면서 어렵고 재미도 없어졌습니다.
2천 년 전 사상가들이 남긴 치열한 고민을 현대에 유효한 것으로 쉽게 알아듣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의 단어로 다시 풀어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자 단어의 의미 하나하나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단어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맥락에서 조합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한자의 풍경』에서는 한자가 만들어질 당시의 생생한 현장을 엿볼 수 있습니다. 글자를 처음 만든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사물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형태를 찾아낼지, 생동감 있는 개념을 구성할지 고민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한자에 좀 더 편한 마음을 갖게 될지 모릅니다. 이런 친숙함은 호기심을 낳고 이것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낼 과학적 분석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한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왠지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은 독자들이라면 이 책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중국 역사 위에 한자의 발전사를 체계적으로 펼쳐놓으셨습니다. 여기에 한자학계의 연구 결과를 충실히 다루면서도 인접 학문을 유려하게 넘나듭니다. 깊은데 또한 쉽지요. 중국 고전뿐 아니라 뇌 과학의 문자 상자 이론, 룬문자와의 비교, 서구 철학에서의 이중 세계론, 몬드리안과 칸딘스키의 논쟁까지 나옵니다. 한자 하나를 이야기할 때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교양을 함께 다룬 연유가 있으신지요?
✍ 18세기 말 독일에서는 목재로서 가치가 있는 나무를 생산하기 위해 숲의 나무들을 벌채하고 단일 수종만 가지런하게 심었습니다. 이런 인공 조림에서는 한동안 우수한 통나무가 생산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한 가지 수종으로만 가득 찬 숲은 특정 해충의 표적이 되면 초토화되기 일쑤였고, 비슷한 나이의 나무들은 폭풍우가 치면 한꺼번에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나무들이 자라는 것도 예전 같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나무들은 과거 혼합림이 축적해놓은 토양의 자산에서 잘 자랐던 것입니다.
한자학 분야에서 연구자들이 축적해놓은 성과는 대단합니다. 그들은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들어가 많은 사실들을 발견해놓았습니다. 이제는 이런 성과들을 좀 더 비옥한 토양에서 잘 자라게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서양 문명 가릴 것 없이 인류의 보편적인 문명사의 흐름 위에 한자의 역사를 겹쳐 보면, 그동안 세부적인 차이 때문에 주목받지 못했던 문자로서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자의 기원에서 풀리지 않았던 근원적인 궁금증을 해결하는 데 최신 뇌 과학의 성과가 길을 밝혀주기도 합니다. 그림문자에서 시작된 한자의 유전자에는 현대 회화의 거장들이 던진 문제의 화두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뼈와 돌과 금속에 관한 과학적 지식은 의외로 그동안 풀지 못했던 한자의 특징을 쉽게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이처럼 『한자의 풍경』은 기존 연구자들이 잘 가꾸어놓은 연구의 토양 사이에 조금씩 다른 곳에서 자란 지식의 묘목들을 심어놓은 활력이 넘치는 한자의 숲이기도 합니다.
🎱 갑골문 그림 문자를 볼 때 '뜻을 담아 이렇게 한 글자씩 창조해갔구나' 하고 경탄하면서도, 당시 사람들이 주술적 목적을 담아 뼈에 글자를 새겼을 장면을 상상하면, 문자에 깃든 신성함 덕분에 숙연해집니다. 선생님께서는 특별히 좋아하는 글자가 있으신지요?
✍ 사슴의 뿔을 형상화한 '아름다울 려(麗)' 자입니다. 사슴의 두 뿔은 똑같이 생기지 않았지만 멀리서 보면 서로 균형을 이루며 절묘하게 대칭을 이룹니다. 대칭은 중국 문화에서 아주 중요한 미학적 장치입니다. 중국의 언어와 문학에서 대칭이 갖는 가치는 제가 주로 연구했던 분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글자가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중국어의 단어는 대부분 2음절 단어와 4음절 고사성어로 구성됩니다. 언어학자들도 이렇게 짝수가 선호되는 이유를 밝히려 했지만,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는 못합니다. 중국시는 5음절과 7음절로 구성됩니다. 이것은 2와 4로 끊어지는 맥락 사이에 주로 한 글자로 구성된 문법 요소 하나를 끼워 넣어 절묘한 악센트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아래 구절은 또다시 대칭을 이루며 생동감 있는 변주를 보여줍니다. 모두 대칭의 미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외톨이로 남는 홀수는 불안정하다고 생각해 생활에서도 기피합니다.
이렇게 멋진 글자가 획수가 많아서 불편하다는 이유로 현대 중국어 간체자에서는 사슴의 두 뿔만 남긴 채 간략화되었습니다. 세월이 돌고 돌아 다시 글자의 기원을 찾아간 것입니다. '麗'자에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형태에서 찾아낸 원시 한자 발명자의 창의적인 상상력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또한 이 글자에는 한자의 발전 과정에서 주기적으로 등장하며 타협하기 어려운 두 가지 욕망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생생한 형태를 보존하려는 예술성과 획수를 간소화하려는 실용성의 대립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이 글자는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