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것이 모두를 위한 것일까. 어려운 질문입니다. 모두의 범위를 좁히면 쉽겠지만 그것을 현실이라 할 수 있을까요. '차분하고 어렵게', 모두의 현실과 함께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 『도시의 동물들』.
길고양이 ③: 곁에 나란히 앉아 길고양이 고민하기
길고양이는 생태, 공중 보건, 대중의 정서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문제가 무엇인지 분석하고 해결할 의무가 있다. 길고양이의 삶의 질만 고려하더라도 우리가 길고양이 문제를 고민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 해결은 윤리적이고 정책적이어야 하며, 누군가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를 대하는 관점과 문화로 자리 잡아야 장기적 효과를 가질 것이다.
고양이가 늘 인간의 곁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존재해왔기 때문에 길고양이를 지금처럼 그대로 살게 두자는 주장은 이미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하기 어렵다. 우리가 지금 상황을 판단하는 방식이 완전히 옳다는 것을 전제로 동물을 대하는 것도 위험하다. 예컨대 도시에 사는 길고양이의 삶이 그럭저럭 괜찮기 때문에 그대로 살게 하자거나, 반대로 그들의 삶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모두 잡아서 없애자는 식의 둔탁한 논의 말이다. 길고양이는 서로 비슷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연하게도 모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에 더해 고양이와 인간이 맺고 있는 여러 사적인 관계들이 문제를 더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완벽한 관점이나 해결책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더 차분한 태도로, 더 어렵게 문제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모든 고양이는 반려동물이어야 하는가?
단 한 세기만에 고양이는 집 안으로 쑥 들어왔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렇다. 전 세계적으로 따지면 집 안에 사는 고양이보다 집 밖에 사는 고양이가 훨씬 많다. 개도 마찬가지다. 개나 고양이는 실내에 감금되어 살도록 충분히 진화하지 않았다(물론 품종의 차이가 크다). 그래서 집 안에서만 온전히 살기는 여전히 어렵다. 고양이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북미에서는 고양이를 실내에서만 기르자는 캠페인까지 하고 있지만, 주인이 있는 고양이의 반 정도가 일상적으로 외출을 하며 살아간다. 집 안의 반려동물로 각광받는 지금도 여전히 고양이는 집 안팎을 오가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동물이다. 문제는 현대의 도시는 집 밖이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다. 동물복지론자뿐 아니라 급진적 동물권리단체인 PETA(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 같은 곳에서도 여러 가지 복지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실내에서 기르는 편이 고양이와 생태계에 더 이롭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기르고 싶은 욕심에 우리는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고양이의 욕구를 억누르며 가두어 기르고 있다. 고양이는 적응력이 무척 좋은 편이지만, 실내에서 안정적으로 기르려면 중성화를 해야 한다. 중성화를 하지 않으면 번식 욕구와 영역을 지키려는 욕구 때문에 안전하게 기를 수 없고, 집 안이 온통 고양이 오줌 냄새로 뒤덮인다. 그래서 수의사들은 모든 고양이를 중성화하도록 권고한다. 21세기에 들어 한국에서는 중성화 수술이 대중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지만 사실 동물의 입장에서는 배를 가르고 생식기를 적출해내는, 심각한 통증을 유발하는 수술이다. 고양이의 입장에서 긍정적이고 자연스러울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