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로 강을 건너고 비행기로 대륙을 오가다 우주선으로 중력을 벗어나게 된 인류. 이렇듯 사람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는 기술 발전을 가늠하는 척도가 됩니다. 육지에서 식량을 공급받던 인류는 언제부터 바다로 진출했을까요. 생각도 하지 않던 부분에서 과거의 큰 발자국을 보게 됩니다. 최초의 어부에 관한 『말랑한 고고학』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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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는 엄연한 사냥꾼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냥감이 물속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육상의 사냥꾼과는 좁혀지지 않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어부의 사냥감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냥감을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끌어들여야 하고, 목표한 사냥감을 물 밖에서도 놓치지 않으며, 끝내는 뭍으로 무사히 끌어올리기 위해 어부들은 그들만의 도구를 고안했다. 용맹함과 민첩함이 육상 사냥꾼의 미덕이라면, 바다 사냥꾼의 미덕은 기다림과 지혜로움일 것이다. 같은 사냥이지만 이렇게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에, 물고기를 잡는 행위는 인간 진화 과정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고도 한참 후에야 나타났다.
바다의 여러 자원 중에서 가장 일찍부터 인간의 식탁에 등장한 것은 물 밖으로 종종 드러나는 조개류였다. 약 15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들이 살았던 스페인 남부의 바혼딜로Bajondillo 동굴에서는 그들이 사냥한 사슴과 염소 뼈들 사이에서 홍합, 따개비, 바다 골뱅이 등 해변에서 채집 가능한 조개류의 껍질이 발견되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홍합인데, 일부에서는 열 손상도 확인되었다. 채집한 조개를 동굴로 가져와 모닥불에 익혀 먹었다는 뜻이다. 이 밖에도 네안데르탈인의 조개 취식 증거가 더 있지만, 동물 뼈에 비하면 조개껍질의 양은 매우 적은 편이다. 네안데르탈인은 대체로 유럽과 아시아 일부 지역의 내륙 지대에만 거주했으므로 바다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고고학적 증거를 봤을 때, 그들은 용맹한 육상 사냥꾼이었다.
구석기 고고학을 전공하고 전기 구석기 시대 뗀석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원도 양구군 상무룡리 유적 발굴을 통하여 본격적으로 구석기 연구를 시작했으며, 그 밖에 제주도 최초의 구석기 유적인 서귀포시 생수궤 등 여러 발굴에 참여했다.
1996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박물관 업무를 시작했으며, 이후 유물관리부와 고고부, 전시팀 등 여러 분야에서 일하며 관련 저술과 전시로 활동을 넓혔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제주박물관, 국립춘천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등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국립나주박물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최초의 진화 인류학 특별 전시 〈호모 사피엔스: 진화∞관계&미래?〉(2021년 5~9월) 등을 주관했다.
지은 책으로 구석기 시대에 관한 한국 최초의 교양 입문서 『단단한 고고학』, 구석기 시대에 인류가 사용한 도구를 연구한 『한국 구석기 시대 석기군 연구』와 『한국미의 태동 구석기·신석기』(공저), 박물관 큐레이터와 큐레이터 지망생을 위한 실용적인 유물 관리 지침서 『박물관 소장품의 수집과 관리』 등이 있다.
지난 북뉴스는 처서를 주제로 한 큐레이션이었습니다. 기온은 서서히 내려가고 있지만 벌써부터 내년 여름이 걱정스럽네요. 늦더위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큐레이션 보낼 때면 완연한 가을이겠네요. 독자의 피드백에 답합니다.
👀: 독자 | 🎱: 담당자
👀 메리메리
광복절이면 원래 선선한 바람이 불었는데요...... 이번에는 처서가 지나도록 찬 바람 소식이 없네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참 알 수 없습니다. 책이 답이 될 수 있을까 싶어 가만 보고는 있습니다.
🎱
메리메리 님, 안녕하세요. 놀랍게도 이 북뉴스를 쓰고 있는 지금은 약간은 선선한 바람이 붑니다. 해가 짧아지기도 했습니다. 책에 답이 있진 않겠지만, 책으로 답을 구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독자님을 응원합니다.
👀 박종환
고칠현삼제라고 하지요. 수도권과 지방에도 좋은 행사 해주세요. 수칠지삼제는 어떨까요?
🎱
안녕하세요, 박종환 님. 고칠현삼제는 옛것에서 7을 지금 것에서 3을 취하라는 뜻이군요. 어디서나 사계절출판사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