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마다 나름의 쓰임이 있습니다. 돌은 돌의, 뼈는 뼈의 특성이 있지요. 지금까지 뼈 도구의 다양한 쓰임에 대해 알아봤는데 이번에는 옷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옛 사람들은 어떻게 옷을 만들어 입었을까요. 캄캄한 동굴에 작은 불을 피우고 바느질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뼈의 물성을 잘 살린 송곳과 창, 화살촉 등으로 돌 도구와 차별화를 꾀해온 뼈 도구는 어느 때부터인가 특화된 영역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약 4만 년 전부터 나타난 새로운 뼈 도구들은 기능면에서 돌 도구들과 점차 분리되었다. 첫 번째 신호탄을 쏜 것은 아주 작고 가느다란 뼈바늘이다. 약 8만 년 전부터 사용한 뼈송곳은 넓은 의미에서 바늘의 조상 격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바늘은 거기서 가죽 등을 섬세하게 연결하는 기능만 분리해 그 효율을 더욱 극대화한 도구다.
바늘의 기능을 ‘가죽 등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 역할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부분은 의복이다. 우리는 현재 지구 전체에 걸쳐 살고 있지만, 원래는 열대 적응종이다. 인체는 땀을 배출하는 방식으로 일정하게 체온을 유지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신체는 옷을 입지 않은 상태에서 영상 27도 이하부터 추위에 반응한다. 기온이 그보다 더 내려가고 바람까지 더해진다면 서서히 저체온증이 나타난다. 이것은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보온 기능을 담당했던 털을 대부분 퇴화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프리카 적도 이외의 지역에서 갱신세pleistocene 동안 여러 차례 반복된 빙하기를 버티고 살아남은 인간들은 어떤 형태로든 옷을 지어 입었을 것이다.
인간의 의복 착용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호모 에렉투스 단계에는 본격화되었다. 고고학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북위 39도인 중국 베이징까지 진출했던 호모 에렉투스들이 옷 없이 생활했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도구의 수준으로 짐작컨대 그들의 옷은 몸에 두르는 망토 형태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네안데르탈인들은 옷의 내한성을 강화한 결과 북위 51도인 러시아의 데니소바Denisova 동굴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이들이 사용했던 도구 중에서 의복 제작과 관련된 것은 밀개end-scraper와 송곳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가죽을 밀개로 무두질한 후 송곳과 가죽끈으로 적절히 연결해서 옷을 만들었을 것이다.
데니소바 동굴은 네안데르탈인들에 이어 호모 사피엔스들도 거주했던 곳이다. 데니소바 동굴의 호모 사피엔스들은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뼈송곳을 더 개량했다. 몸체를 더 가늘게 깎고 약간 두터운 아랫부분에 실을 꿸 수 있는 구멍 하나를 추가했다. 가죽에 ‘구멍 뚫기’ 공정과 ‘끈 끼우기’ 공정을 한 번에 할 수 있게 효율을 높인 것이다. 이로써 우리가 ‘바늘’이라고 부르는 도구가 발명되었다. 뼈에 구멍을 뚫는 기술은 이미 10만 년 전부터 조가비 장신구에 도입한 기술로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송곳에 구멍 하나를 뚫은 것만으로도 의복을 비롯한 생활 전반에서 대단히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실을 장착할 수 있는 구멍이 있는 뼈바늘은 대체로 5∼4만 년 전쯤에 발명되었고, 현재 자료들 중에서 데니소바 동굴의 뼈바늘이 가장 초기의 것에 속한다. 이른 시기의 뼈바늘들은 북시베리아와 같이 주로 추운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추운 지역에 바늘 출토량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의복과 밀접한 도구라는 뜻이다.
인간이 의복을 ‘일상적’으로 착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언제일까. 우리는 머리카락에 기생하는 머릿니Pediculus humanus capitis와 옷에 알을 낳고 번식하는 몸니Pediculus humanus corporis의 DNA가 분화된 시기를 통해서 인류의 의복 착용 시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머릿니의 일부가 옷에 기생하는 몸니로 진화했다는 가설을 적용한다면, 그 시기는 대략 10∼8만 년 전이다. 이 무렵은 뼈송곳의 사용이 일상화된 때와도 일치한다. 즉 뼈송곳의 주된 수요 역시 일상화된 의복 제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송곳과 뼈바늘의 쓰임은 어떻게 구별되었을. 뼈송곳은 네안데르탈인들도 사용한 도구이고, 송곳만으로도 기본적인 맞춤형 옷 제작이 가능하다.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에렉투스보다 더 추운 지역까지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도 뼈송곳과 같은 옷 제작 도구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들이 고안한 뼈바늘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정교한 도구다.
구석기 고고학을 전공하고 전기 구석기 시대 뗀석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원도 양구군 상무룡리 유적 발굴을 통하여 본격적으로 구석기 연구를 시작했으며, 그 밖에 제주도 최초의 구석기 유적인 서귀포시 생수궤 등 여러 발굴에 참여했다.
1996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박물관 업무를 시작했으며, 이후 유물관리부와 고고부, 전시팀 등 여러 분야에서 일하며 관련 저술과 전시로 활동을 넓혔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제주박물관, 국립춘천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등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국립나주박물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최초의 진화 인류학 특별 전시 〈호모 사피엔스: 진화∞관계&미래?〉(2021년 5~9월) 등을 주관했다.
지은 책으로 구석기 시대에 관한 한국 최초의 교양 입문서 『단단한 고고학』, 구석기 시대에 인류가 사용한 도구를 연구한 『한국 구석기 시대 석기군 연구』와 『한국미의 태동 구석기·신석기』(공저), 박물관 큐레이터와 큐레이터 지망생을 위한 실용적인 유물 관리 지침서 『박물관 소장품의 수집과 관리』 등이 있다.
지난 북뉴스는 『브로콜리를 좋아해?』 김지현 작가 인터뷰였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에 관한 다정한 이야기. 이번에도 소중한 피드백 소개합니다.
👀: 독자 | 🎱: 담당자
👀 젤리
'랑'을 통해 이번에 『브로콜리를 좋아해?』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인터뷰를 보니 반갑네요 ㅎㅎ
🎱
안녕하세요, 젤리 님. 편집자 북클럽 '랑' 참여자시군요! 사계절출판사의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하고 계시다니 정말 기쁘네요. 앞으로도 좋은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글자들의 수프』는 그 이야기를 셰프만의 경험과 언어로 해석하며 쓴 독서일기입니다. 정상원 셰프가 명작에서 길어올린 문장과 그 속에 녹아있는 음식 이야기를 천천히 음미하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리뷰를 남겨주신 분 중에서 다섯 분을 초대하여 정상원 셰프와 음식과 문학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에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