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런 맥락에서 군색한 구호가 나오는 것 같다. “개는 가축이 아니라 가족입니다.”, “모든 개는 반려동물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반려동물이 아니라 가족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언어를 찾는 여정은 멀고도 험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떤 마음인지는 너무 잘 알지만, 달라진 개의 지위를 설명할 적당한 언어를 찾지 못해 큰 말을 골라 쓰다가 의식까지 덩달아 과장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개는 대체 무엇이 되어야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가축은 야생동물의 반대말로 쓰인다. 개의 가축화 과정에 대해서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개가 모든 가축종 중에서 가장 먼저 가축화된 종이라는 사실이다. 인류에게는 농경보다 수렵에 의존하던 세월이 훨씬 길었다. 늑대는 인간과 비슷한 형태의 사냥을 하는 동물이었다. 계획적인 장거리 추적에 능한 이 두 종의 동물은 무리를 지어 사냥감이 지칠 때까지 쫓아가서 협공해 죽이는 방식을 선택했다. 함께 사냥을 하며 어떤 사건들을 겪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서로 가까운 존재로 남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에 가축화가 시작되었다. 늑대는 개가 되었고, 인간이 한곳에 정착해 살기 시작하면서 개들도 인간의 마을에 정착했다. 개는 가축이 맞다.
‘개는 가축이 아니다’라는 구호는 개를 잡아먹는 문화가 아직 남아 있는 한국에서, 개를 다른 가축종처럼 잡아먹지 말자는 의미에서 나왔다. 축산법에서는 개를 가축으로 규정하고 개를 집단으로 길러 이윤을 창출하도록 정한다. 개고기를 생산하기 위한 육견 농장이나 ‘강아지 공장’이라고 불리는 애완견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모두 축산법에 의해 농업인의 지위를 갖는다. 법적으로 인정받은 농업인은 대출이나 세제 혜택, 농지 이용 등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개를 축산업에 이용하지 말자는 캠페인이 동물 산업 전반에 대한 반대로 이어진다면 분명 동물에게 이익일 것이다. 그러나 개가 가축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은 개와 다른 가축종의 차이만 부각할 뿐 다른 동물에 대한 인식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개’라는 동물을 ‘가족’으로 여기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물론 ‘가족’이라는 말도 빠르게 변하고 있어서 그 구성원이나 구성원 사이의 관계를 무어라 딱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한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관계를 가족이라고 한다면 한국의 개가 사람과 가족이 된 것은 불과 20~30년 전의 일이다. 그전까지 개는 고기의 생산이나 사냥, 집 지키기 등 명확한 용도를 위해 길러졌다. 더 이전에는 가족의 테두리에 걸치거나 그 바깥 어딘가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거나 한곳에 묶인 채로 인간과 함께 살았다. 비인간동물도 가족이 될 수 있다면 혈연관계나 혼인관계가 아닌 누구나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귀결에 이르니 좋은 일이다.
‘반려동물’이라는 말은 어떨까? 대략 10여 년 전부터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조금씩 사용되기 시작했다. 1970~80년대 서구에서 사용되던 ‘companion animal’이라는 말의 번역어다. 2016년경부터는 ‘애완동물’이라는 말을 대체하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용어처럼 쓰이고 있다. ‘애완’이라는 말이 동물을 장난감(완구)처럼 여기는 인식을 강화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동물보호법에서도 개, 고양이 등 여섯 종을 반려동물로 정하고 특별히 더 보호하게 되었다. “반려의 목적으로 기르는”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종을 기준으로 보호의 수준을 달리 정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동물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데 반려종인가 아닌가를 나눌 필요는 무엇이며, ‘반려’라는 개념이 종에 따라 하고 안 하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게다가 반려동물로 정해진 개나 고양이라고 해서 온전히 반려의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기르는 고양이 둘을 특별히 아끼지만, 내 곁에 안전하게 두기 위해 집 안에 감금하여 기른다. 먹고 싶은 것을 다 주지도 않으며, 놀자고 할 때마다 놀아줄 수도 없다. 심지어 이 고양이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내 마음대로 우리 집에 데려왔다. 고양이가 아프다면 고양이의 의사에 개의치 않고 병원에 데려갈 것이다. 그들에게 치료를 거부할 권리 같은 건 없다. 이것이 어떻게 반려하는 관계일 수 있겠는가. 개를 기르는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개를 반려견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지만, 늑대와 함께 사냥하던 시절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그 관계는 다분히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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