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9 사계절 시리즈: 봄
『도시의 동물들』 9회_마트의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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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과 노예는 초대받지 않은 존재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본인 의지로 쇼윈도에 들어간 동물은 없습니다. 『도시의 동물들』 9회. 마트의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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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물건인가? 사고팔아도 되는가?
대형마트에서는 웬만한 물건을 다 판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민법 개정안이 통과의 기로에 서 있는 지금, 마트에서는 아직 동물을 판다. 한국의 법은 세상을 사람과 사람이 아닌 물건, 이렇게 둘로만 나누어 보고 동물은 사람이 아니라는 직관적 판단으로 물건 쪽에 넣어놓았다. 새롭게 발의된 민법 개정안은 이제 사람과 물건,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사람을 제외한 생명체로서의 동물 이렇게 셋으로 나누어 바라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류 정당과 대통령까지 나서서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데에 합의했지만, 법원행정처 등 법 전문가들은 혼란스러워하며 반대 의견을 내는 중이다. 그럴 법도 한 것이 현실의 동물 다수는 가격도 있고, 주인도 있으며, 거래 대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동물을 물건에서 빼내는 데는 꽤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동물을 물건처럼 사고팔아도 괜찮은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성(性)도 팔고, 교육도 팔고, 의료도 팔겠다고 달려드는 세상에 동물을 파는 것쯤이야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러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봉이 김선달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닐 것이다. 팔지 않는 게 윤리적이었거나 혹은 그런 윤리가 없던 시대에도 어떤 것은 팔지 않았다.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곰의 쓸개즙을 먹겠다고 국가에서 곰을 수입해 기르기를 장려하던 시대가 있었다. 웅담 채취를 산업화씩이나 하는 바람에 웅담이 팔리지 않는 시대가 되자 곰들을 철창 안에 방치하게 되었다. 철창에서 탈출한 곰은 총에 맞아 죽었고, 때로는 탈출한 곰에 물려 사람이 죽기도 했다. 이제는 국가에서 수백억을 들여 농장에 살던 곰을 보호하는 시설을 만들고 있다. 돈이 된다고 무모하게 ‘산업’을 만들었다가는 애꿎은 희생자와 생존자를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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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동물 코너의 풍경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나는 장난감 코너와 자동차 용품 코너 사이 어디쯤에 있는 진열장을 찾는다. 그 앞에 서면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 제일 아래층에는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 안에 토끼(Oryctolagus cuniculus), 햄스터(주로 시리아 출신의 골든햄스터, Mesocricetus auratus), 기니피그(Cavia porcellus)가 톱밥에 파묻힌 채로 있고, 그 위에는 사막이나 열대 지역 출신의 파충류들이 전시되어 있다. 요즘 부쩍 애완용으로 인기가 오른 게코과(도마뱀붙이과, Squamata)가 파충류 코너의 주를 이룬다. 잉꼬(Melopsittacus undulatus)나 십자매(Lonchura striata domestica)처럼 가축화가 이루어져 값싸고 대중적인 새를 판매하는 곳도 있다. 그 옆에는 더 큰 진열대에 어항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어항 안에는 물고기가 잔뜩 들어 있다. 물고기의 종류는 유행에 따라 금붕어와 비단잉어에서 반짝반짝 형광등 불빛을 반사하는 열대어들로 옮겨 갔다. 장수풍뎅이(Allomyrina dichotoma)나 사슴벌레(Dorcus titanus), 육지집게과(Coenobitidae), 아프리카왕달팽이(Lissachatina fulica)를 사육 도구와 함께 세트로 파는 장면도 이제는 익숙하다. 심지어 동물이 아닌 물이끼도 ‘반려 이끼’라는 이름으로 판매한다.
유행은 ‘수요’가 만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판매되는 동물종의 유행만큼은 ‘공급’이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1980년대부터 이색적인 동물을 기르고 싶어서 안달을 하던 어린이여서 구관조와 오랑우탄을 사달라고 졸라댄 적은 있다(당연히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햄스터나 게코는 그 시절 어린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종이었다. 운이 좋아서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를 잡으면 과일을 먹이며 한 달씩 기르다 죽이기도 했지만, 마트에서 돈을 주고 산 곤충에게 전용 젤리(수액을 먹고사는 곤충을 위해 상품화한 먹이)를 사 먹일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중앙아시아와 유럽, 남아메리카와 북아프리카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반도의 마트까지 옮겨 와야 하는 종을 기르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러운 취향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되는 세상이라고, 팔고 사고 길러도 되는 동물이라고 누군가가 자꾸 이야기하는 탓에 유행이 만들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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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최태규
동물복지학을 연구하는 수의사이자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로 일한다. 『일상의 낱말들』(공저), 『관계와 경계』(공저), 『동물의 품 안에서』(공저) 등을 썼다.
📷사진_이지양
순수 미술과 미디어를 전공한 시각 예술가이다. ‘당신의 각도’ 전시를 계기로 『사이보그가 되다』에 사진으로 참여했고, 이후 『일상의 낱말들』, 『아무튼, 메모』, 『1만 1천 권의 조선』 등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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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북뉴스는 7월 27일(목)에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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