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의 존재는 그 도구가 필요했던 상황을 증명합니다. 동시에 그 증명은 상황을 해결할 아이디어가 누군가의 머릿속에 떠올랐을 거라는 유추를 가능하게 합니다. 지난 이야기에 이어 송곳과 창, 화살촉까지 뼈로 만들어진 물건들을 살핍니다. 뼈 도구를 사용했던 사람들과 그들이 살았던 세상을 그리며 이어지는 원고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초기의 뼈 도구들은 그보다 100만 년 이상 먼저 사용하기 시작한 돌 도구에 비하면 초라하거나 그 아류에 불과했다. 종류도 한정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아직 물성이 다른 재료들을 차별적으로 활용하는 단계까지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뼈 도구의 진면목을 발견한 것은 호모 사피엔스다. 호모 사피엔스들은 이전의 인류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다양한 기술적 혁신을 이루어냈는데, 뼈 도구와 관련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술 발전 과정에서 뼈 고유의 특성을 최대한 끌어내고 적절한 자리를 잡아주었다.
뼈는 돌보다 무르지만 가공이 쉽다. 나무 역시 돌보다 가공이 쉽지만, 뼈보다는 강도와 탄성이 떨어진다. 반면 돌은 가장 강한 만큼 가공이 까다롭다. 구석기 시대 도구 제작에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이 세 가지 재료들 가운데 뼈는 ‘가공은 쉽고 적당히 단단한’, 그래서 어쩌면 애매할 수도 있는 중간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호모 사피엔스들은 이를 장점으로 적극 활용했다. 핵심은 가늘고 긴 형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갈아서 가공하는 기술이 본격화되지 않았던 시기였으므로 뼈를 반복해서 긁어서 가늘게 만들었다. 이때 뼈를 긁어내기 위해 날카로운 석기를 사용했으므로 표면에는 무수히 긁힌 자국이 특징적으로 남아 있다.
‘긁어서 가늘고 길게 만드는 기술’의 기원은 이미 30만 년 전 독일 쉐닝겐Schöningen 유적에서 발견된 나무 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가문비나무로 만든 창들은 껍질이 제거되고 양 끝이 뾰족하게 깎여 있다. 가늘고 길게 깎아 만든 뼈 도구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은 송곳류이다. 돌을 깨뜨려 뾰족한 송곳을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어렵지만, 날을 길게 만들기 힘들어서 성능 또한 우수하지 않다. 돌 대신 나무로도 대체해보았을 테지만, 그건 내구성이 약해서 일회용에 불과했을 것이다. 반면 팔다리 부위와 같이 치밀하고 단단한 뼈로 만든 송곳은 상당한 성능을 유지할 수 있다. 뼈 송곳의 유용성을 입증하듯 호모 사피엔스의 초기 뼈 도구 중에는 송곳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림 1.블롬보스 동굴의 뼈 송곳]
이와 관련하여 대표적인 유적이 남아공의 블롬보스Blombos 유적이다. 블롬보스 유적은 호모 사피엔스 지적 성장의 특이점을 거론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뼈 도구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유적에서는 뼈로 만들어진 약 8만 년 전의 송곳 25점이 출토되었다. 송곳 표면에는 무수히 가는 선들이 남아 있어 날카로운 석기로 정교하게 긁어내어 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뼈 송곳의 일반적인 용도는 가죽에 구멍을 뚫는 것이다. 가죽 조각은 서로 이어야 옷도 되고 신발도 되므로 구멍 뚫는 작업이 빈번하게 필요했을 것이다.
송곳과 함께 발견된 또 하나의 중요한 뼈 도구는 창이다. 창은 송곳과 전혀 다른 도구 같지만, 가죽을 뚫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용도의 도구이기도 하다. 블롬보스 유적의 뼈 도구를 검토한 연구자들은 송곳과 창이 동일한 반제품(blank)을 손질해서 만들어졌지만, 최종 완성 기법은 서로 달랐다고 설명한다. 블롬보스의 창은 모두 세 점인데, 완전한 형태로 남은 것은 길이는 8센티미터에 폭이 1.5센티미터다. 창의 표면에는 매끈한 광택이 형성되어 있다. 송곳에는 없는 이 광택은 기능적 의미는 없으며, 창의 외관을 돋보이게 하고자 의도적으로 가공된 장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시기에 뼈로 만드는 길고 가는 형태의 도구들을 위한 반제품이 존재했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창에 의도적인 광택을 추가했다는 점 역시 주목되는 부분이다. 창은 식탁의 풍요로움을 제공하는 귀중한 도구였으므로 그 가치를 ‘광택’이라는 상징적 요소로 표현한 것이다.
구석기 고고학을 전공하고 전기 구석기 시대 뗀석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원도 양구군 상무룡리 유적 발굴을 통하여 본격적으로 구석기 연구를 시작했으며, 그 밖에 제주도 최초의 구석기 유적인 서귀포시 생수궤 등 여러 발굴에 참여했다.
1996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박물관 업무를 시작했으며, 이후 유물관리부와 고고부, 전시팀 등 여러 분야에서 일하며 관련 저술과 전시로 활동을 넓혔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제주박물관, 국립춘천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등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국립나주박물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최초의 진화 인류학 특별 전시 〈호모 사피엔스: 진화∞관계&미래?〉(2021년 5~9월) 등을 주관했다.
지은 책으로 구석기 시대에 관한 한국 최초의 교양 입문서 『단단한 고고학』, 구석기 시대에 인류가 사용한 도구를 연구한 『한국 구석기 시대 석기군 연구』와 『한국미의 태동 구석기·신석기』(공저), 박물관 큐레이터와 큐레이터 지망생을 위한 실용적인 유물 관리 지침서 『박물관 소장품의 수집과 관리』 등이 있다.
지난 북뉴스는 피서에 관한 큐레이션이었습니다. 더위를 피해 떠난 곳에 시원함과 한 권의 책이 있길 바랍니다. 이번에도 소중한 피드백 소개합니다.
👀: 독자 | 🎱: 담당자
👀 지나가는나그네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고. 그러나 겨울은 따뜻할 수 있고, 여름은 시원할 수 있는 법.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책이 주는 여유가 있어서인지도요. 책 소개 고마워요.
🎱
안녕하세요, 지나가는나그네 님. 좋은 글귀 감사합니다. 지나가지 마시고 머물러주세요 : ) 독서를 통한 여유를 더 많이 가지실 수 있도록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소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