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빛의 전부였던 인류는 언젠가부터 불을 피우고 등잔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필요에 따라 빛을 활용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은 깊은 동굴 속에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이번 연재에서 독자가 볼 수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말랑한 고고학』. 독자님의 동굴을 밝혀보시길.
1화에서는 인간이 빛을 사용하기 시작했던 무렵의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뜨거운 불에서 빛을 분리하고, 그 빛을 원하는 곳으로 운반할 수 있게 된 인간에게 어둠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들이 빛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고고학자들이 구석기시대 등잔의 존재를 확신하게 된 이후, 유럽에서는 등잔이 계속 나왔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의 등잔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라스코와 라무트 동굴의 등잔처럼 전체를 정교하게 갈아 만든 최상급 등잔은 아주 소량에 불과했다. 상당수는 간단히 가공해서 오목하게 만들거나, 자연적으로 오목하게 생긴 재료를 골라 사용했다. 심지어 일부는 손바닥만한 돌에 불을 붙였다. 일례로 이누이트족은 임시 작업장에서 작고 편평한 돌에 동물성 지방과 이끼류를 얹어서 등잔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되었다. 등잔의 형태가 이처럼 다양하게 분화되었다는 것은 그 사용이 보편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등잔은 주로 어디에서 발견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동굴 안쪽보다는 입구와 바깥에서 훨씬 더 많이 발견되었다. 동굴 내부에서 발견된 등잔은 통계적으로 20퍼센트 미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등잔은 동굴에 들어갈 때도 사용하지만 나올 때도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 한다. 등잔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장소는 동굴의 입구 근처이고, 대개 근처에 모닥불을 피운 흔적이 있다. 아마 입구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등잔을 만들거나 손질하고,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모닥불에서 불을 옮겨 붙였다고 추측된다. 한편 정교하게 가공한 등잔일수록 동굴 깊숙한 곳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흥미롭다. 투박한 등잔은 이동하거나 그림을 그릴 때 주로 사용하고, 정교한 등잔은 동굴 내부에서 ‘어떤 의식’을 행할 때 사용했던 것 아닐까? 최상품 등잔에는 동굴 벽화에 등장하는 동물이나 상징적 기호들이 그려져 있다는 점에서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그림1. 원시 등잔과 동굴벽화 그리기(상상도)]
구석기시대의 등잔은 얼마나 밝았을까? 원시 등잔의 성능이 궁금했던 실험고고학자들이 말이나 소과 동물의 지방으로 등불을 붙여보았다. 그 결과는 우리가 사용하는 양초보다 어두웠다. 빛의 강도를 ‘룩스Lux’ 단위로 표시한다. 1룩스는 1미터 거리에서 촛불 하나가 내는 빛의 밝기이다. 원시 등잔은 1룩스가 채 되지 않는 셈이다. 그렇지만 동굴 속 완전한 암흑을 몰아내고 여러 활동을 하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한 장소에서 수십 개의 등잔이 발견된 사례도 있다. 때로는 여러 개의 등잔을 동시에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가 책과 인터넷에서 본 구석기시대 동굴 벽화 사진은 동굴 안을 전깃불로 환하게 밝힌 후에 촬영한 것들이다. 그래서 벽면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렇지만 구석기시대에는 등잔을 아무리 여러 개를 켠다 하더라도 전면을 한눈에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말은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동굴 벽화를 보고 지금 우리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 차이는 동굴 벽화를 이해할 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보이는 것이 달라지면 인식 또한 달라진다. 상상컨대 구석기인들은 자그마한 등잔이 밝혀주는 부분들만 보았을 것이다. 불빛 사이사이에 어둠으로 가려진 공간은 상상력으로 채웠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시 사람들에게 더욱 ‘현실적인’ 일이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비롭지’ 않았을까? 실제로 동굴 벽화 중에는 동물의 일부만 그리거나 한 곳에 서로 다른 동물과 이야기를 그린 경우가 많다. 그 이유를 원시 등잔의 성능과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구석기 고고학을 전공하고 전기 구석기시대 뗀석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원도 양구군 상무룡리 유적 발굴을 통하여 본격적으로 구석기 연구를 시작했으며, 그 밖에 제주도 최초의 구석기 유적인 서귀포시 생수궤 등 여러 발굴에 참여했다.
1996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박물관 업무를 시작했으며, 이후 유물관리부와 고고부, 전시팀 등 여러 분야에서 일하며 관련 저술과 전시로 활동을 넓혔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제주박물관, 국립춘천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등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국립나주박물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최초의 진화 인류학 특별 전시 〈호모 사피엔스: 진화∞관계&미래?〉(2021년 5~9월) 등을 주관했다.
지은 책으로 구석시 시대에 관한 한국 최초의 교양 입문서 『단단한 고고학』, 구석기 시대에 인류가 사용한 도구를 연구한 『한국 구석기 시대 석기군 연구』와 『한국미의 태동 구석기·신석기』(공저), 박물관 큐레이터와 큐레이터 지망생을 위한 실용적인 유물 관리 지침서 『박물관 소장품의 수집과 관리』 등이 있다.
날씨가 일교차가 크고 변덕스럽습니다. 감기 걸리기 쉬운 요즘입니다. 일과 중 막간에 이 북뉴스를 읽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쉬었다 가시길 바랍니다.
100번 넘게 북뉴스를 쓰다 보니 이제는 녹차 끓이듯 지면을 채우는 것 같습니다. 맛 좋은 차 한 잔 대접하는 기분으로 피드백에 답합니다. 지난번 북뉴스는 『모두 다 음악』 미란 작가님 인터뷰였습니다. 주말에 청소하며 듣기 좋은 노래도 추천을 받았습니다.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우리 사회에도 중요한 이야기. 『계급 천장』에 비추어 우리 사회에도 계급 천장이 존재하는지, 그에 따른 이익이나 불이익을 체감하고 있는지, 그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 여러분의 의견을 들려주세요. 모인 자료를 바탕으로 결과 콘텐츠를 만들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