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몸짓에만 남아 있는 시대가 있습니다. 기호나 기록은 말할 것도 없고, 삶의 미미한 흔적조차도 찾기 어려운 희미한 옛날입니다. 그건 바로 인간이 이 땅에 처음 발을 디딘 순간입니다.”
『단단한 고고학: 돌과 뼈로 읽는 인간의 역사』(김상태 지음, 2023년 4월 30일)의 첫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고는 땅속 깊이 묻혀 있던 돌과 뼈들을 꺼내서 초기 인류의 삶과 생각을 들려줍니다. 땅에 내려와 ‘두 발’로 딛고 일어섰다는 것은 곧 나머지 ‘두 발’은 달리기, 걷기, 매달리기 등의 역할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뜻입니다. 두 발로 선 인간이 또 어느 날 우연히 날카로운 돌조각 하나를 집어 들면서, 진화 시계가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단계에서 자유로워진 두 앞발은 발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손’이라고 구분하는 신체가 탄생한 것입니다.
호모 사피엔스(왼쪽)와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오른쪽)의 손과 발
『단단한 고고학』은 구석기 시대의 인간이 불을 사용하고 석기를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마침내 아프리카 밖으로 나온 인류는 아시아 동쪽에서 빙하기의 혹독한 추위를 겪으며 불 사용 기술을 습득하였고(호모 에렉투스), 유럽에서는 르발루아 기법을 개발하여 석기 제작 기술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켰습니다(네안데르탈인). 시간이 지나며 기술은 더욱 발전하여,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러서는 아예 석기의 ‘대량 생산 체제’라고 할 수 있는 돌날 기법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구석기 시대가 끝날 무렵에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보잘것없던 돌조각이 어떤 맹수라도 거침없이 포획할 수 있는 위력적인 무기로 발전했고, 인간은 동물의 가죽을 비롯해 자연에서 획득한 각종 전리품으로 몸과 삶터 전체를 단단하게 둘러쌌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출발하여 지구의 모든 땅에서 번성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이 모든 과정을 물려받은 후손입니다.”(『단단한 고고학』, 마치며 중에서)
그러나 인간만 ‘손’을 쓰는 건 아닙니다. 사진 속 카푸친 원숭이를 보세요. 돌을 들고 있는 게 무엇으로 보이나요?
그런데 인간의 진화는 이게 전부였을까요? 구석기 시대 내내 인류는 생존과 기술 발전에만 몰두하였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구석기 시대 700만 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요? 이제부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김상태 선생님의 <말랑한 고고학: 앞발이 손이 되면서 생긴 일들>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손을 갖게 된 원시 인류의 삶을 다시 관찰할 것입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이들의 문화와 예술입니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 속 황소 그림의 섬세함과 미적 요소를 분석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1만 5000년 전에 그 캄캄한 동굴 안에 모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떻게 그림을 그렸을지, 과학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날의 장면을 복원하려 합니다. 그리하여 탄생한 “삶과 기술의 총합인 예술”을 발견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인간 개인의 생존을 넘어 인류 공동체의 기억이 쌓여 있는 구석기 시대로 돌아가볼까요?
3월 14일의 첫 연재는 「등잔의 기원-제3의 눈을 획득한 사람들」로 시작합니다. 캄캄한 동굴 속에 등잔을 켜고 모여 춤추고 노래하다 잠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