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를 읽으며 나는 그런 ‘비밀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장면 때문이다. 아주머니와 우물에 함께 가는 것을 비밀로 해야 하느냐고 묻는 아이에게, 아주머니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아이를 돌려세워 아주 한참, 가만히 바라본다. 아이가 아주머니의 눈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은 처음이다. 소녀는 다만 바라본다. 짙은 파란색 속에 군데군데 다른 푸른색이 섞여 있는 아주머니의 눈동자를. 아주머니는 단호하게 말한다. “이 집에 비밀은 없어, 알겠니?” 혼내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 알려주려는 것이다. 아이는 부끄러운 듯 망설이다가 그대로 따라 한다. “네, 이 집에 비밀은 없어요.” 아주머니는 이어 덧붙인다. “비밀이 있는 곳에는 부끄러운 일이 있는 거야.” “우린 부끄러운 일 같은 거 없어도 돼.”
왜 이 순간 눈물이 솟구치는 걸까. 나에게 모든 것을 숨김없이 말해야 한다고 속삭이는 듯한 아주머니의 단호함에 소녀는 놀란다. 놀라면서도 기쁘다. 기쁘면서도 슬프다. 이 어린아이의 영혼 깊숙이 파고드는 이런 둔중한 울림은 처음이기에. 소녀는 울지 않으려고 깊이 숨을 들이마신다. 힘들어도 비밀, 슬퍼도 비밀이었던 소녀의 삶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아주머니는 소녀의 어깨를 안아주며 말한다. “넌 너무 어려서 아직 모를 뿐이야.” 하지만 소녀는 안다. 이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음을. 이런 비밀 없는 소통을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기에,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이 장면에서 소녀와 아주머니 사이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그냥 잠시 친척 아이를 맡아주는 그런 사이가 아닌, 아주 진지하고 깊이 있는 사이가 된 것이다. 우리 사이엔 비밀은 없다고. 비밀이 있는 곳에는 부끄러운 일이 있는 거라고. 우린 부끄러운 일 같은 건 없어도 된다고. 모든 걸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 그런 자유롭고 마음 편안한 분위기를 아이는 처음으로 경험해본 것이다. 부모가 아이들을 보살필 시간이 항상 부족하기에 웬만한 감정과 욕구는 그저 꾹꾹 참아가며 지낸 소녀는 이제 참지 말고 모든 것을 다 말해도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웠을까. 그리고 그동안 참아왔던 시간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누군가에게 소중하게 여겨진다는 것은 왜 이토록 눈물겨운 일일까.
이토록 사랑받는 동안, 아이는 훌쩍 크고, 소녀를 향한 킨셀라 부부(에드나와 존)의 마음은 더욱 깊어지지만, 어느새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고 이제는 떠날 순간이 다가온다. 소녀의 남동생이 태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이제 개학을 하려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새로 산 구두를 길들이러 가자’고 손을 잡는 킨셀라 아저씨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간다. 아이가 넘어지거나 다치지 않게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는 킨셀라 아저씨. 아이는 당황한다. 아저씨가 손을 잡아주자, 아빠가 한 번도 자신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