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표정이나 침묵마저도 읽어내는 마음의 눈이 떠진다. 그 사람이 하고 싶은 말, 미처 하지 못한 말, 할 수 있는데도 차마 눌러 담는 말까지도 다 이해할 것만 같은 마음. 우리가 이런 마음을 텍스트로 옮기면 그대로 문해력이 된다. 텍스트에 대한 멈출 수 없는 사랑의 기술, 그것이 문해력이니까. 텍스트에 대한 사랑은 비단 문학작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수학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수학 공식이나 평범한 숫자들까지도 아름다워 보인다.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온갖 원소기호로 가득한 난해한 수식들마저도 눈부신 공예품처럼 반짝인다. 음악을 사랑하는 나에게는 온갖 악보들과 복잡한 음악 용어들까지도 종이 위에서 보석처럼 반짝인다. 텍스트에 대한 사랑, 그것만 있으면 충분하다. 반대로 아무리 어휘력이 뛰어나도 텍스트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텍스트의 함축적 의미까지는 제대로 밝혀내기 어렵다. 우리가 더 나은 문해력을 얻기 위한 최고의 기술, 그것은 바로 텍스트에 대한 사랑의 기술이다.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사랑받는 느낌의 정체는 무엇일까. 누군가 나를 한없이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아주는 것도 좋고, 사랑하는 이가 있기에 어딜 가든 이제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좋다. 혼자 밥을 먹을 때도 ‘이렇게 맛있는 건 그 사람과 함께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할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같이 있지 않을 때도 언제나 내 마음속에 존재함을 깨닫는다. 이렇듯 사랑받는 느낌의 좋은 점은 수없이 많지만, 나에게 가장 좋았던 것은 ‘이제 더 이상 간절히 그 누군가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좋다’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방황하고, 뒤척이고, 서성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삶의 나침반이 마구 흔들려 매일 불안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런 느낌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대화와 대화 사이에 틈이 있어도 아무런 어색함이 없는 것. 엉뚱하거나 우스꽝스러운 대답을 해도, 그냥 다 받아줄 것 같은 느낌. 황당한 농담을 해도 다 이해해줄 것 같은 느낌. 가슴속에 휘몰아치던 내 모든 간절한 문장이 비로소 쉴 곳을 찾아낸 듯한 안도감이 바로 사랑의 느낌이다.
이제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아도 좋을 것만 같은, 이 충만한 사랑의 느낌이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에서는 이렇게 드러난다. 킨셀라 아주머니가 잠들기 전 소녀를 눕히고 머리핀으로 귀지를 파줄 때 둘의 대화는 꼭 다정한 모녀 같다. “여기다가 제라늄을 심어도 되겠다.” “엄마가 귀 청소 안 해주니?” 소녀는 자신을 돌봐주지 못하는 엄마를 다 이해한다는 듯 이렇게 말한다. “엄마한테 항상 시간이 있는 건 아니라서요.” 아주머니는 소녀의 엄마인 메리에게도 연민을 느낀다. “불쌍한 메리, 당연히 그렇겠지.” “너희를 전부 다 돌봐야 할 테니까.”
📝 작가 정여울
매일 읽고 쓰는 사람.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듣는 사람. 힘없고 소외받는 사람 곁에 서려는 사람. 어두운 시대, 버릴 수 없는 희망의 잉크를 가득 머금은 글을 쉼 없이 쓴다. KBS라디오 ‘이다혜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살롱드뮤즈’,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을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문학이 필요한 시간』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끝까지 쓰는 용기』 『공부할 권리』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헤세로 가는 길』 『빈센트 나의 빈센트』 『내가 사랑한 유럽top10』 『마흔에 관하여』 『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 『월간 정여울』(전 12권) 『마음의 서재』 등 다수가 있다.
새해입니다. 24라는 숫자가 어색합니다. 두꺼운 외투를 벗을 때가 되어서야 23년이 끝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듯합니다. 여담인데, 최근에 『인삼과 국경』이라는 조선, 청나라의 관계를 다룬 역사책이 나왔습니다. 책에는 과거에는 면에 가까웠던 국경이 근대로 이어지며 선의 개념으로 바뀌는 과정에 관한 설명이 담겨 있습니다. 해를 넘기는 것도 마치 근대 이전의 국경을 넘는 것처럼 실은 면과 면을 오가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얇은 선을 넘는 게 아니라 여백을 지나는 일.
👀: 행간의 의미.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어본 말입니다. 알기 싫어도 알게 되는 누군가의 말을 액면가 그대로 이해하려고 부단히 애를 쓰던 때, 그 누군가가 제게 했던 말입니다. 눈치 좀 보라는 뜻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사람에게는 눈치 없는 사람이 되는 게 저는 좋았습니다. 불현듯 그때 생각이 나네요. 하하하.
🎱: 안녕하세요, 독자님. 눈치 없는 사람이 되는 일도 결국에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 그러니까 충분한 문해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눈치 없는 사람이 되는 게 좋았다"는 독자님의 말이 한동안 머릿속에 맴돌 것 같네요. 독자님의 저항을 응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독자 여러분, 천천히 읽어주세요. 그리고 연재를 읽고 드신 생각이 있다면, 또 정여울 작가님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후기에 남겨주세요. 이전에 주신 기대의 말들은 잘 전했습니다. 그리고 때마다 차곡차곡 모아 또 전하겠습니다. 짧게나마 남긴 말들도 상상 이상의 커다란 힘이 될 거예요. 책은 독자가 완성합니다 : )